오피니언 사설

즐거운 방학에 굶는 아이들만은 없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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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경제위기의 한파를 가장 매섭게 느끼는 건 소외계층, 그중에서도 아이들이다. 부모의 실직과 파산, 그로 인한 이혼과 가출이 증가하며 끼니마저 챙기기 힘든 아이들이 늘고 있다. 그나마 학기 중엔 학교에서 점심 한 끼를 급식으로 때우며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다. 올 현재 전국에서 61만7000명의 초·중·고생이 학교에서 무료 급식을 받는다. 그런데 방학 중엔 대상자가 29만4000명으로 크게 줄어든다. 줄잡아 32만여 명의 아이가 급식 혜택에서 소외되는 것이다.

방학 중에 갑자기 집안 형편이 피는 것도 아닌데 대상자가 급감하는 건 이원화된 관리체계 탓이다. 학교 급식은 교육과학기술부가 담당하지만, 방학 중 급식은 각 지방자치단체가 맡고 있다. 교과부가 무료 급식자 명단을 통보하면 지자체별로 방학 중에도 급식이 필요한지 개별 조사를 해 지원 대상을 선정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춘기로 한창 예민한 아이들이 수치심을 느껴 “괜찮다”고 답한다고 한다. 결식 아동임을 인정하느니 차라리 배를 곯는 쪽을 택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비난이 빗발치자 최근 각급 학교에 재조사를 지시했다. 지자체 조사에서 누락된 아이들에게도 추가로 급식 혜택을 주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올해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하루빨리 관리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언제까지 방학 때마다 조사에 조사를 거듭하며 어린 가슴에 못을 박을 것인가.

무엇보다 예산의 확충이 시급하다. 방학 중 무료 급식에 배정된 예산은 연간 2000억원이나, 이번 재조사를 통해 지원 대상자가 늘어나면 당장 돈이 모자랄 판이다. 나라 살림이 빠듯한 줄 알지만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을 굶기지 않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예비비나 특별교부금 등을 끌어다 쓰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길 바란다.

차제에 방학 중 소외계층 아동 지원 체계를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가 한 끼 먹거리를 제공한다지만 조손 가정이나 맞벌이 가정 아이들은 방학이면 온종일 돌봄의 손길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될 수밖에 없다. 이를 막기 위해 몇몇 시민단체에서 방학 중 급식과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이제 정부가 나서야 한다. 임시 교사를 채용해 학교마다 직접 ‘방학 교실’을 운영하는 프랑스 사례를 참조할 만하다. 즐거운 방학이 두렵기만 한 아이들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