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성역에 있는 전용 특별열차는 석 달간 꼼짝 안 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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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호 11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머리 위로 왼손을 들어 박수를 칠 만큼 건강을 회복했을까. 북한 언론이 소리 높여 김 위원장의 건강을 띄워도 의심은 가시지 않는다.

김정일 위원장, 10월 이후 6차례 현지지도 했다는데

김 위원장 와병설 이후 10월 11일 사진이 처음 공개된 뒤 최근까지 북한 매체들은 모두 여섯 차례 현지지도 동정을 사진과 함께 전했다. 821부대 산하 여성 포병중대 시찰(10월 11일), 축구 경기 관람(11월 2일), 인민군 2200부대와 534부대 시찰(11월 5일), 신의주 현지지도(11월 26일), 북한 공군부대 시찰(12월 1일), 평양 중앙동물원 현지지도(12월 2일) 등이다. 문제는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다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821부대 시찰은 사진 배경이 가을이 아니어서 처음부터 가짜로 지적됐다. 통천 소재 이 고사포부대를 방문했다면 인근 원산특각(별장)까지는 있었어야 할 위원장의 행적이 전혀 포착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었다. 이 때문에 위성 감시망을 통해 미국은 ‘특별 동향은 없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진작부터 가짜로 판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축구 경기 관람은 다르다. 경기가 열린 평양의 강동군 초대소에서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 위성은 초대소에 트럭 등 10여 대가 넘는 차량이 등장한 상황을 파악했다. 호위총국 차량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선수용으로 보기엔 너무 많았다. 이 때문에 이 보도는 사실로 간주됐다.

이후 상황은 또 달라졌다. 평양을 멀리 떠난 군부대 시찰, 신의주 현지지도, 황해도로 추정되는 북한 공군부대 시찰은 증거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병으로 쓰러졌다는 보도가 본격화된 9월 중순 이후 위원장 전용 특별열차가 한 번도 평양 인근 용성역을 떠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위원장의 원거리 이동 시 늘 사용하는 특별열차가 적어도 3개월 동안 서 있다는 것은 평양을 떠난 적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드물게 차량으로 움직인다 해도 수십 대 차량이 이동하기 때문에 포착돼야 하는데 이것도 없다. 위원장이 항공기로 이동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평양을 멀리 떠난 현지지도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데니스 와일더 아시아 담당 선임 보좌관이 11월 21일 “김정일이 건강 위기에 빠졌다”고 말하고,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미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5일 ‘위원장의 병세가 상상 이상으로 나쁘다’고 보도한 것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국가보위부 출신으로 탈북한 자유북한방송 이금룡 국장은 “1호 열차로 불리는 특별열차는 용성역에서 지선을 뽑아 별도로 관리되고 있다”고 말했다. 용성역은 주석궁에서 가깝다.

그러면 사진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국장은 “촬영기사가 김정일을 따라다니며 찍어서 필요한 것만 쓴다”며 “사용되지 않은 사진이 얼마든지 있고, 합성 기술도 좋아 짜깁기를 한다는 사실을 주민들도 잘 안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는 ‘왼손 박수’ 사진이 3년 전 것이라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흐름도 있다. 위성이 아닌 다른 경로로 정보를 입수하는 당국 일부에서는 ‘김 위원장의 동선과 사진이 사실’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국대 김용현 교수는 “우리 정보 당국의 판단 내용이 대체로 맞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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