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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붙이기 개각 불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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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 고건 총리가 24일 총리공관에서 김우식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난 뒤 정부 중앙청사 집무실로 향하고 있다(왼쪽). [장문기 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24일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오른쪽). [최정동 기자[

고건 총리의 제청권 행사 거부로 개각이 난기류에 휩싸이면서 현 정부 집권 2기의 출범이 삐걱거리고 있다. 물러날 총리가 '원칙'을 내세워 제청을 거부하면서 그간 국정 전 분야의 '원칙'을 강조해오던 청와대는 당혹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특히 高총리의 전격 사표 제출은 '몽돌(노무현 대통령)과 받침대(高총리)'로까지 불려오던 高총리가 사실상의 정치적 결별을 선언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高총리의 사표를 이르면 25일 수리한 뒤 ▶30~31일께 후임총리 지명▶6월 5일(17대국회 개원) 전후 임명동의안 국회 제출의 수순을 계획하고 있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총리지명자가 사실상의 총리 업무를 하는 '총리서리 체제'는 전혀 생각지 않고 있다"며 "지명자는 인준 절차가 끝날 때까지 지명자에 그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高총리의 사표 수리 이후 국회에서 새 총리 임명동의안이 통과될 때까지 총리직은 이헌재 경제부총리의 직무대행 체제로 갈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파문은 정치적 의도의 밀어붙이기식 개각이 발단이었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전 의장과 김근태 전 원내대표의 입각 때문이었다. 다음 대권에 뜻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두 사람에 대한 학습과 격리라는 이중의 목적이 배어 있었다. 당직 재편으로 이들이 공중에 뜨게 되자 당측의 '조기개각'목소리가 거세졌다. 더욱이 盧대통령이 차기 총리로 염두에 둔 김혁규 전 경남지사에 대해 야당이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다. 청문회 진통 등 인준이 불안해지자 정동채 의원을 포함해 정치인 3명의 개각을 서두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원칙이 흔들렸다. 현 정부는 출범 초부터 "헌법상 총리의 실질적 제청권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송경희 대변인)이라고 강조했었다. 그러나 이번의 정치적 개각은 처음부터 高총리가 모른 채 추진됐을뿐더러 물러날 총리의 새 각료 제청이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는 논란을 불렀다. "앞으론 헌법을 존중해 달라"는 헌재의 탄핵 심판이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이다.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은 "통일부 장관을 지금 바꿔야 하는 이유가 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알아서 해석해 달라"고만 했다. 한 수석비서관은 "세상일이 시나리오대로 잘 안 된다"고 했다. "원칙을 강조해온 청와대가 부메랑을 맞은 모양새"라는 얘기가 나온다.

청와대가 사실상 마지막 공직을 물러나는 高총리의 입장과 스타일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高총리의 '고심'을 언론에 공표하는 바람에 그의 운신 폭을 좁혔다는 것이다. 盧대통령이 高총리를 사전 설득했어야 했다는 얘기다.

야당 측은 "高총리의 제청권 행사 거부는 후임총리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소신있고 지극히 정당한 모습"(한나라당 구상찬 부대변인)이라고 高총리를 옹호하고 나섰다. 반면 여권 내에서는 "그 정도는 넘어갈 수 있었다"며 "高총리의 기회주의적 태도"라는 푸념도 나온다. 盧대통령은 高총리의 사표제출 보고를 받은 뒤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윤태영 대변인은 전했다. 盧대통령과 高총리는 25일 조찬 면담을 한다.

高총리의 사표와 함께 개각이 다음달로 늦춰지면서 복잡한 변수도 발생하고 있다. 高총리 사표를 수리하고 김혁규 전 지사를 총리로 지명할 경우 국회 개원 전부터 야당과 일전을 치러야 한다. 원 구성부터 난관에 봉착한다. 그럴 경우 각종 입법들이 미뤄진다. 어쨌든 다음달 말께 개각이 성사되면 중폭의 개각으로 확대되는 등 개각의 개념도 재검토될 전망이다.

최훈.이정민 기자<choihoon@joongang.co.kr>
사진=장문기 기자 <chang6@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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