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결혼은 악’ 페미니스트의 수다 폭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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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가 아니란 사실을 자각하는 데서 페미니즘은 시작된다. 사진은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한 장면. [중앙포토]

결혼제국
우에노 치즈코·노부타 사요코 지음
정선철 옮김, 이매진, 1만4000원

대담집 『결혼제국』에는 전투적 페미니즘의 왕수다가 펼쳐진다.

나쁜 남자들이 왕 노릇을 해온 결혼제국의 숨겨진 성차별 이데올로기에 대한 융단폭격이다. 여성주의의 독설이 만만치 않게 담겨있기 때문에 ‘여자들만의 논의’에 낯가림이 있거나, 심장이 약한 독자라면 짐짓 못 본 척해도 좋다. 하지만 요즘 출판물의 한 흐름을 엿보기 위해서는 요긴한 읽을거리인 것도 사실인데, 공저자인 우에노(도쿄대 교수)·노부타(카운셀러) 사이의 ‘나쁜 남자 죽이기’ 대담은 죽이 썩 잘 맞는다. 이들이 보기에 세상의 나쁜 남자들은 오랫동안 ‘낭만적 사랑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유포시켜 여성들을 포섭해왔다.

결혼을 통해 안정을 찾고, 사랑에 충만한 섹스를 즐기며 자녀를 키우는 것이 좋은 여자라는 생각을 심어온 것이다. 말이 되는가? 이때의 여성들은 독립된 존재이기를 그친 결혼대기조일 뿐이다. 이들의 표현대로 세상의 많은 결혼이란 서브프라임 매리지(거품 결혼)인데, 이때 여자는 끝내 결혼제국의 노예로 굴러 떨어진다. 근대 이후 정형화된 가정이란 강제수용소와 무엇이 다를까?

결국 이 책은 ‘젠더병’과의 굿바이를 부추기는 교과서다. 젠더병은 한 남자에게 소속됐다는 안정감을 믿거나 학수고대하는 바보 같은 여성을 지칭하는 말인데, 책에는 이런 류의 다소 낯선 용어들이 많으니 이 점 염두에 둘 일이다. 예상되는 주 독자층은 30대 여성이다. 꽤 노골적인 섹스 이야기 등도 툭하면 등장하지만, 전혀 외설스럽지는 않으니 오해 마시라.

『결혼제국』 스타일의 책은 실은 지난 5~6년 사이 국내 출판계의 큰 흐름이다. 하지만 재미와 깊이가 함께 하는 왕수다로 치자면 여성신학자 현경이 펼치는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에 미치지 못하다. 『연애잔혹사』의 고윤희나 『나에게는 두 남자가 필요하다』의 마르티나 렐린과 같은 목소리를 일본 여성들을 통해 확인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글쎄다. 여성주의 인터내셔널 같은 국제적 연대의 기구가 따로 있어서 나쁜 남자와 그들이 세운 제국에 대한 공격을 총지휘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 땅 청동기문명 이후 여성들을 눌러온 남성제국의 업보일까?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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