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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브이세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준우가 거기 없다는 말인가,이런 늦은 시각에는 전화를 바꾸어줄 수 없다는 말인가.

우풍은 상대방 반응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몰라 송수화기를 든 채 잠시 동안 귀를 기울이고만 있었다.이 방 주인이 돌아오면 용태가 담 쪽으로 난 창문을 향하여 작은 돌멩이를 던지기로 했는데,돌멩이가 유리창에 부딪치거나 유리창을 깨뜨

리는 소리가 남과 동시에 우풍이 방을 뛰쳐나가야 할 것이었다.하지만 아직까지는 벽 속 수도관을 타고 물 흐르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여보세요,전화 바꿨습니다.”

얼마나 반가운 목소리인가.우풍의 두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수만 리 바다 저 건너에 있는 준우의 목소리가 바로 옆방에서인듯 이렇게도 잘 들리다니.

“나야,우풍이.니키 마우마우단.”

“우풍아,너 어디서 전화 거는 거야? 비트에 전화를 놓았을 리는 없고.너 혹시 집으로 돌아온 거 아냐?”

준우의 목소리에는 반가움과 함께 경계심이 묻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긴.이 전화는 잠시 실례한 전화야.이제 니키 마우마우단은 더욱 결속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어.”

“그야 당연하겠지.근데 당연한 말을 새삼스럽게 하는 이유가 뭐야?”

“사실은 일이 터졌어.정당방위라면 정당방위고,사고라면 사고고.아무튼 니키 마우마우단이 사람을 죽였어.재판을 해서 처단해버렸어.”

“어떤 놈이야?'죄와 벌'에 나오는 전당포 노파 같은 사회적인 해충이야? 그래서 재판을 해서 처단했다는 거야?”

준우의 목소리가 사뭇 떨리고 있었다.

“딸을 건드린 아버지야.”

“그런 놈은 죽어도 싸지.”

“근데 딸이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말을 이랬다 저랬다 해.딸을 건드리지 않았을 수도 있어.”

“그럼 뚜렷한 증거도 없이 죽였단 말이야?”

“정당방위라고 했잖아.그 놈이 우리를 강간범으로 몰면서 경찰서로 끌고 가려고 했어.우리 니키 마우마우단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처단을 했어야만 했어. 문제는 그 시체가 우리 비트에 아직도 있는데,시체를 어떻게 처리해야 감쪽같이 처리할

수 있느냐 하는 거야.준우 네 생각에는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

“으음.가만있자,이건 어때? 작년에 삼풍 백화점 무너져서 수백명이 죽었잖아.그런 사고 또 나면 말이야,시체를 몰래 옮겨다가 거기다 쑤셔 박아버리면 누가 알겠어.지하철 공사 하다가 가스 폭발로 무너진 데도 좋고.정 안 되면 뚜껑 열린

맨홀도 좋고.한국은 사고 투성이잖아.그런 걸 잘 이용해보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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