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칼럼>견제 필요한 대통령 권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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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일개'깃털'이 단 1년 사이에 8억원을 꿀꺽하고'집사'에 불과했던 측근이 20억원의 떡값을 챙길 수 있었던 것이 그들 자신의 수완이나 능력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그보다는 그들의 등뒤에 있는 대통령,대통령권력이 그들의 그런 부패

를 실현시킨 원동력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재작년 全.盧씨 비자금사건은 우리나라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무한부패.무한치부(致富)할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과거 경험을 보면 대통령 자신은 물론 그의 가족.주변.측근들이 부패하고 월권(越權)할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었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없었던 내각제의 2공때를 제외하면 부패로부터 자유로운 대통령권력은 한번도 없었다.

대한민국 50년 역사에서 나라를 위험에 빠뜨리고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한 큰 재앙의 장본인은 대부분 대통령이었다.생각해 보라.3선개헌,부정선거,유신,4.19,광주항쟁,권력찬탈,권력형 부정부패….이 모든 것들이 누구 때문에 일어났는가

.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역대 대통령이 독재자요 군사정권이었기 때문에 이런 재앙을 초래했다고 생각해 왔다.민주화가 되고 문민정권이 들어서면 이런 재앙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문민정권에서도 한보사태라는 재앙은 터졌다.물론 한보사태는 대통령이 일으킨 건 아니다.오히려 대통령이 큰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러나 한보사태가 일어난 배경도 따지고 보면'대통령권력'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깃털'이 압력을 행사할 때 그 압력을 통하게 한 것은'깃털'의 힘이 아니라 대통령권력이었다.집사에게 20억원의 떡값을 먹도록 해준 것도 대통령권력

이었다.대통령권력으로도 특혜대출은 해줄 수 없고,5조원 대출은 불가능하다고 돼 있었던들 한보사태는 없었을 것이다.대통령 아들이 한보사태의 배후인물이란 의혹이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대통령권력이 그렇게 강하지 않은들 오늘날 김현철(金

賢哲)씨가 겪는 고통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권력에 있는 것이다.어떤 특혜도 줄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하는 그 권력이 재앙의 본질이다.이런 권력이 있는 한 대통령 본인이 아무리 훌륭하고 청렴해도 부패와 월권의 검은 독소가 스며들 여지는 생긴다.

한보사태를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제도의 허점을 얘기하고

있다.여신심사제도의 부실이라든가 금융감독기능의 미비를

제기하고,수서사건때 왜 제도적 보완을 하지 못했느냐고 한탄한다.

그러나 오늘날'제왕적 대통령'이라 불리는 이런 대통령권력을 그대로

두고는 재앙은 방지할 수 없다.대통령권력을

견제.감시.제한하고,권력행사의 적법화(適法化).투명화를 보장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야 말로 재앙을 방지하는 본질적인 제

도적 보완이다.

지금처럼 각종 공직의 임면권을 모조리 장악하고 집권당의 공천권과

인사권을 모조리 장악하며,경제.외교정책의 결정권을 모조리 장악하는

절대권력이면 언제라도'깃털'과'집사'와'실세'의 부패는 나올 수 있다.왜

내부에 직언이 없느냐고 하

지만 대통령에게 자기 운명이 걸린 부하 입장에서는 대통령만 쳐다보게

되지 국민 소리가 귀에 들어올 수 없다.검찰이 대통령 지시나 눈치에 따라

수사하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국회가

견제한다지만 다수여당을 대통령이

장악하는 한 견제는 불가능하다.이러니까 대통령은 초월적

존재다.대통령중심제는 곧 대통령책임제인데도 대통령은 늘 지시만

한다.“수재민 구호에 만전을 기하라”“물가안정에 최선을

다하라.”이치대로라면“수재민 구호에 만전을 기하겠다”“물

가안정에 최선을 다하겠다.” 이렇게 돼야 하는게 아닌가.

대통령제의 교과서인 미국 대통령도 이렇지는 않다.공직 임명은 의회의

청문회를 거쳐야 하고 의회협력없이 중요정책을 추진할 수 없다.클린턴

자신이 지금도 조사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더이상'대통령의 비극'을 만들지 않기 위해 대통령권력의

견제.감시.제한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국회의 인사청문회,대통령도 조사할

수 있는 독립된 강력한 사정기관,중요정책 결정의 투명성을 높일

절차.과정의 입법화,정당의 1인

지배구조 탈피,국회 활성화등 가능한 모든 일을 해야 한다.

대통령도 나쁠 수 있고 대통령권력은 더 나쁘기 쉽다.우리가 좋은

대통령을 갖는게 얼마나 어려운가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나쁜 대통령'에

대비하고 나쁘기 쉬운 대통령권력에 대비하기 위해 견제.감시장치를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됐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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