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100년사>6.휴대용 축음기 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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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에디슨은 축음기를 전화처럼 빌려주어 임대료 수입을 올릴 계획이었다.반면 최초로 디스크를 발명한 에밀 베를리너는 축음기를 가정용 오락기기로 생각했다.또 유명한 가수나 연주자의 곡을 담은 음반을 대량생산,음반판매에 대한 로열티 수입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비디오가 처음 나왔을 때처럼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의 홍보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그러나 20년대부터 대부분의 가정에 축음기가 보급되면서 하드웨어(축음기)보다 소프트웨어(음반) 판매에 더욱 치중하게 되었다.

“그라모폰(축음기)을 만들면서 음반을 만들지 않는 회사는 마치 면도기를 만들면서 면도날을 만들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28년 데카가 주식회사로 발돋움하는데 크게 기여한 증권업자 에드워드 루이스의 말이다.

역사상 최초의 협주곡 음반은 1910년 랜던 로널드경이 지휘하는 뉴심포니오케스트라가 녹음한 그리그의'피아노협주곡'.당시 26세의 피아니스트 빌헬름 박하우스가 협연자로 선정됐다.물론 1악장도 반쯤 잘린채 녹음됐다.

1914년 미국에만 소노라.에올리언.브룬스위크(당구대와 볼링 생산업체)등이 가세해 2년후엔 모두 4백46개 업체가 음반업에 종사했다.

같은 해 1차대전이 발발하자 그라모폰사의 많은 직원이 일자리를 잃었고 남은 사람들도 월급이 4분의3으로 줄어 음반업계는 큰 타격을 입었다.하지만 전화위복이라는 말처럼 나중엔 오히려 음반산업이 전쟁 특수(特需)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

1914년 악기제조업체인 바네트 새뮤얼로 출발한 데카사가 이듬해에 개발한 음반사상 최초의 휴대용 레코드 플레이어인 데카 둘세폰.무려 10만여대가 보급돼 영국군 참호속에서 사기를 북돋우는등 인기를 끌었다.

전쟁이 끝난 후 데카는 둘세폰을 가리켜'혁혁한 전과를 거둔 전쟁영웅'으로 치켜세우면서 홍보전을 펼쳤다.“전쟁에서 너는 무엇을 했는가.데카여!”

한편 빅터 토킹 머신사의 엘드리지 리브스 존슨 사장은 피아노와 같은 고급 마감재를 사용한 축음기 빅토롤라를 개발,축음기는 훌륭한 가구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사진설명>

최초의 휴대용 축음기'데카 둘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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