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장유래>우산각골-조선청백리 柳寬이 우산받고 책읽던 곳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서울동대문구신설동과 성북구보문동에 걸쳐있는 타원형 지역이 지금은 번화한 거리로 변모했지만 조선시대에는 우산각골(雨傘閣里)로 불리던 한적한 마을이었다.우산각골이란 고려말부터 조선 세종때까지 우의정을 지낸 하정(夏亭)유관(柳寬)이 울

타리도 없이 두어칸짜리 오막살이에 살면서 비가 오면 우산을 받치고 책을 읽었다하여 그 청렴함을 기리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말하자면'청백리(淸白吏)골'인 셈이다.현재 신설동 로터리에서 신답초등학교까지의 거리를'하정로'로 한 것도 바

로 그의 청백리정신을 이어받자는 뜻에서다.어느 여름 한달간이나 계속되는 장마탓에 빗물이 간장국같이 새는 방안에서 책을 읽던 柳정승이 문득 우산을 받치고 있던 부인을 돌아보고는“이 장마속에 우산이 없는 사람은 어이 지낼꼬”하며 자신의

처지보다 백성을 먼저 생각했다는 얘기가 서거정(徐居亭)의'필원잡기'(筆苑雜記)에 적혀있다.柳정승은 벼슬에 있으면서도 틈만 나면 호미를 들고 김을 매고 밤이면 제자를 길러내는데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이름을 일절 묻

지않는 평등한 애민정신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이만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