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구멍 드러낸 이한영씨 피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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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한영(李韓永)씨의 피격은 정부의 귀순자관리와 보호방식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귀순자들이 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워 관심을 끄는 일이 벌어질 때마다 상황에 따른 문제점들이 단편적으로 제기돼 온 일은 있었으나 李씨

의 경우처럼 여러 문제점들이 총체적으로 터진 것은 처음이다.

李씨의 피격을 접하면서 우리는 우선 두가지 문제를 떠올린다.정부가 귀순자관리와 보호를 제대로 하고 있는가,李씨의 익명성(匿名性)이 보장되고 신분이 노출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하는 물음이다.이 두가지 문제중

하나에만 정부가 충실했더라도 이번과 같은 참사가능성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귀순자들이 경제적 고통을 말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어려움은 정신적 고통이다.사회로부터의 차별감에서부터 소외감,신변에 대한 불안 등을 많은 귀순자들이 호소하고 있다.그러나 지금까지 정부가 한 일은 이러한 정신적 문제엔 소홀

한채 소정의 정착금을 주어 일자리를 주선하고 사회에 내보내 일정기간 관리하는 것이 전부였다.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개 귀순자의 주거지경찰관이 맡아 형식적으로'관리'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관리는 귀순자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어주지 못한다.그 최선의 방법은 귀순동포들이 사회의 주목을 받지 않고 일반시민속에 자연히 어울려 살도록 하는 것이다.그러기 위해선 귀순자가 있을 때마다 신원을 자세히

밝혀 보도매체에 공개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물론 황장엽(黃長燁)비서와 같은 경우는 예외지만 이제 귀순자의 많고 적음으로 남북한 체제경쟁에서 우월한 것처럼 자만하던 시기는 지났다.귀순자에 대한 관계당국의 대대적인 언론홍보는 정권의 정당성이 빈약하던 시절 정치적으로 이용된 경

우도 적지 않았다.또다시 李씨의 경우와 같은 비극이 없으려면 원칙적으로 귀순자는 공개하지 않고 예외적으로 공개하는 경우는 철저하게 신변을 보호하는 체계적인 관리정책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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