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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군대에서 애교를 배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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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다. 남자 동기들이 옹기종기 승진대열에 합류하며 그녀를 지나쳐 가기 시작했다. ‘아~니,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감히 남녀 차별?’ 생각이 갑자기 많아진 그녀, 원인 분석에 나섰다.

‘내가 그 놈놈놈보다 못한 게 뭐야? 실력? 그거야 단연 난데? 음주가무? 자주 참석하지는 않지만 참석했다 하면 확실하게 보여주잖아? 통솔력? 내가 우리 81년생 훈남 김 대리를 얼마나 예뻐해 주는데?’ 이렇게 하나씩 지워가다 보니, 그녀가 도달한 결론, ‘그래 난 여잔데도 애교가 없어!’

그녀에게 애교는 입사 초기부터 공적 1호였다. ‘나만은 결코 애교 따위로 승부하지 않으리’ 맹세에 맹세를 거듭했던 그녀는 드디어 애교와 전혀 무관한 캐릭터로 변신하는데 성공했지만, 이제 와서 그것이 문제가 될 줄이야!

이런 결론에 도달한 그녀에게 든 의문이 하나 더 있었으니, ‘남자들은 대체 애교를 어디서 배워 오는 거야? 엄마 아빠가 그런 걸 가르쳐 줄 리도 없고, 학교에선 절대 그런 걸 안 가르쳐 준다는 것, 내 두 눈으로 확인한 바고, 그럼, 군대?’

그렇다! 군대가 바로 그곳이었던 것이다. 남자들의 애교 전수의 장, 군대! ‘이 자들이 군대에 모여서 무슨 짓을 하는 가 했더니, 역시 그런 비법을 전수하고 있었군! 그런 거야? 정말 그랬던 거야? 훈련소 교관부터 고참까지, 그들이 모두 그랬다는 거야?’

자, 이 순간 우리 남자들은 모두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 애교? 군대에서 확실하게 배웠다고! 그것도 아주 진~하게!

여기까지 분석을 하고 나니 궁금증이 대부분 풀리면서, 그녀에겐 새로운 지평이 열기기 시작했다. ‘그래, 나도 한 번 해보는 거야. 내 속 저만치에 처박아뒀던 그 애교를 다시 불러내, 그들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야’

그로부터 몇 달 뒤, 다크 서클이 턱까지 걸린 그녀의 모습은 거의 절망적이었다. 애교? 아무나 하남? 주변 사람들의 눈길도 예전 같지 않았다. 노처녀가 시집 한 번 가보려다 사기결혼이라도 당한 듯, 무안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접었다. 당돌했던 애교에 대한 추억을. 푸념처럼 그녀가 던진 마지막 한 마디, ‘군대에서 가르쳐 준다는 애교, 유격훈련보다 힘든가 봐요?’

‘그렇습니다’ 미안하게도, 그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매일 아침 언 땅에 깍지 끼고, 매일 저녁 점호시간에 배운 애교가 이렇게 강력한 힘을 발휘할 줄이야! 그랬다. 우리 남자들은 그렇게 울고 싶었지만 울 수 없었고, 속으로는 교관이나 고참에게 주먹 한방 날리고 싶어도 겉으로는 스마일~ 활짝 웃을 수 있는 초강력 교태 훈련으로 최소한 2년 동안 단련한 몸이 아니던가!

직장 생활하면서, 윗분 아랫님, 배알이 꼬여도 애교를 담아 웃고 넘길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비굴해지더라도 라면 한 그릇, 건빵 한 봉지를 얻는 편이 이득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반항해봤자 돌아오는 것은 주먹뿐이기도 하고.

그런데, 군대 다녀왔다고 가산점까지 준다고? 여자들이 이런 내막을 알면 국방부의 덤 얹어 주기 시도에 나라가 발칵 뒤집힐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남자들은 이미 직장에서 살아남는 필살기를 군대에서 익히고 나왔다. 애교! 애교! 말이다.

캐리어 우먼들을 보면 대체로 ‘관계’보다는 ‘일’에 집중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일만 잘하면 되지, 할 일 없이 무리지어 다니면서, 남자들이란 작자들이 수다는 웬 수다?’ 이런 생각을 하기 마련이지만, 남자들은 그렇게 무리를 지어 다니며 세력을 만들고, 밀어주고 당겨주면서 몫을 키우고, 창밖의 그녀들을 도태시키는 것으로 보면 정확하다.

이런 그녀들이 애교까지 없다? 이건 거의 자살행위로 봐야 한다. 끈끈한 애교로 뭉친 남자들에게 애교와 담 쌓은 그녀들은, 술 마실 때 좋은 안주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기세 등등 그녀들을 보면서, 그들은 이렇게 입을 맞춘다. ‘아직 쓴 맛을 안 봐서 그래’ ‘쓴 맛을 봐야 나긋나긋해지지’

쓴 맛을 보고난 그대? 혹시 비굴모드로 나긋나긋해지는 자신을 발견한 적은 없는가? 그렇다. 그래야 남자들이 애교클럽에 끼워준다는 사실, 알고는 있기 바란다.

이종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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