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 교육정책

중앙일보

입력

정부가 교육 정책을 가지고 학생과 학부모를 우롱하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근자에 뉴스‘깜’이 되는 소식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올 초에 발표한 ‘수능대체 영어능력평가시험 도입’ 방안은 수능 중심의 지필 영어시험에 익숙한 학생들에게는 큰 도전이자 모험과도 같은 시도로 평가받았다. 이것이 잘만 정착되면 대한민국 영어교육에 근본적인 변화를 꾀할 수도 있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 발표 이후 전국의 영어학원들은 앞다퉈 ‘한국형 토플’을 부르짖기 시작했고, 설명회나 학부모 간담회를 통해서 누구보다 발 빠르게 시험 정보와 대비 방안을 쏟아내며 난리를 피웠다.초등학교, 중학교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말하기듣기쓰기읽기를 모두 평가한다는 그 시험 때문에 경기가 아무리 어려워도 영어 학원만큼은 끊지 않고 계속 보내리라 다짐했고, 학원들은 엄청난 출혈을 각오하고서 앞다퉈 커리큘럼 개편 작업을 추진했었다. 하지만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어 놓았던 그 정책이 발표된 지 1년도 채 안 돼서 유보된다고
하니, 사교육 기관들은 ‘쌩쑈’를 한 꼴이 되었고, 시험 대비 전략을 설파하던 관계자들은 거짓말쟁이 늑대소년이 되고 말았다.

이 시험을 도입하면 사실상 사교육비가 더 늘어날 수 밖에 없는데, 사교육을 반으로 줄이겠다는 현 정부의 공약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다. 많은 사람이 동시에 접속해서 무리 없이 치러내기가 쉽지 않고, 수십만 명의 수험생을 평가할 원어민 인력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도그 이유에 포함된다.
정책을 유보할 수 밖에 없는 합당한 이유를 찾자면 수십 가지가 있겠으나, 왜 이런 중차대한 일들이 충분한 숙고도 없이 발표되고 또 번복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일단 관심을 끌고 보자는 건지, 해 보고 안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생각 없는 말 한마디로 국민들의 질타를 받고 있는 유명 인사들을 수없이 보아왔으면 이제 좀 더 신중할 수 없을까.
이제는 중학생들조차 정부의 교육 정책에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대한민국의 교육 시장은 나비효과가 어느 곳보다도 확실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섣부른 날갯짓이 학생들 가슴에 상처만 남기지 않도록 하려면 교육부는 좀 더 신중한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문상은
정상JLS 입시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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