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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때 중요한 건 현금”→ 스와프 체결 밑바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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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세계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지 두 달여. 대한민국 최고경영자(CEO) 이명박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현대그룹 CEO 시절 숱한 위기를 겪으며 현대건설을 세계적 기업으로 일궈낸 이 대통령의 CEO 리더십은 어떻게 현실에 적용되고 있을까.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CEO 경험이 지금 같은 난국을 이기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후 이 대통령이 관계 장관 및 참모들에게 두 가지를 집중적으로 강조했다고 전했다.

첫째는 ‘현금’이다. 이 대통령은 “위기 때 중요한 것은 현금이다. 모든 채널을 통해 현금을 확보하라. 내가 기업에 있을 때 보니 위기가 왔을 때 수익을 따진 기업은 다 망했다. 현금 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최근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현금(All you need is cash)”이라는 특집 기사에서 ‘판매가 제로에 그쳐도 일년을 버틸 수 있는 현금을 마이크로소프트(MS)가 확보해야 한다’는 창업자 빌 게이츠의 생각을 소개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정부가 금융위기 직후 비밀리에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을 추진하고 한·중·일 재무장관 회담을 통해 중국·일본과의 통화 스와프 확대에 달려든 데엔 이런 배경이 있었다.

둘째는 ‘공격’이다. 이 대통령은 “위기 때 큰돈을 벌 수 있다. 위기 때 순위가 바뀐다. 평상시엔 아무리 해도 순위를 뛰어넘는 것이 잘 안 된다. 그러자면 수비만 해선 안 된다. 공격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실제로 9월 18일 제2차 민관 합동회의에서 기업인들에게 “공격적 경영에 나서 달라”고 주문하는 등 공개석상에서 일관되게 공격적 경영을 주장하고 있다.


2일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도 “어려울 때일수록 도전적인 경영을 해야 한다. 지금 투자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정책 운용도 공격 모드로 바뀌었다. ‘11·3 대책’이 대표적 사례다. 애초 기획재정부 예산실이 구상한 수정 예산 규모는 5조원대였다. 이 대통령은 강만수 장관에게 “그 정도로 되겠느냐”며 증액을 지시했다. 결국 규모는 10조원으로 늘어났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필요하면 적자 규모를 더 늘려서라도 경기침체를 최대한 막을 것”이라며 “앞으로 기업 구조조정을 본격적으로 하겠다는 것도 수비에 안주하지 않고 공격을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위기 때 공격을 펼치자면 긍정적이어야 한다. 이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가 꼽은 이 대통령의 장점 중 하나다. 이 대통령은 현대그룹 CEO 시절 가족에게 회사가 어렵다는 내색을 일절 하지 않았다. 김 여사는 이 대통령이 “큰 회사를 하다 보면 어려운 일도 있고, 좋은 일도 있다. 걱정 마라. 회사는 잘 돌아간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정부 내에서도 긍정적인 언급이 잦아지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지만 선진국들이 줄줄이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판이니 우리 사정을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며 “재정과 금융 정책에 여유가 많다는 점에서 자신감을 가질 만하다”고 말했다.

◆“CEO 리더십으로 경제 살려야”=시중엔 이 대통령이 CEO 시절처럼 이번 위기 극복에 필요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주길 바라는 의견이 많다. 경기 처방을 더 과감하게 하고 역대 정부가 손대지 못한 덩어리 규제를 단호하게 풀라는 것이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영리 의료법인 금지 같은 해묵은 규제들을 과감하게 풀어 내수 기반을 확충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정부가 결단력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는 “경제는 예상보다 빨리 나빠지고 있는데 정부 대응 속도는 오히려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며 “정치권을 설득해 정책 집행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렬·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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