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소위 첫날 들여다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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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가 제출한 283조8000억원 규모의 수정예산안을 심의, 확정할 국회 예산결산특위 예산안조정소위가 1일 파행으로 출발했다. 민주당이 “경제위기 상황을 반영한 재수정예산안을 제출해야 한다”며 소위를 보이콧했기 때문이다.

재수정예산안을 두고 양측의 입장은 이렇듯 첨예하다. “지금과 같은 예산을 고집하면 민주당이 협력할 수 없다”(정세균 민주당 대표), “앞으로 강행 처리할 테니 비난 말라”(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강한 목소리만 오간다.

사실은 어떨까. 쟁점별 양당의 주장을 검증했다.

#쟁점 1.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낮아지면 예산안을 다시 짜야 하나.

민주당에선 의당 다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가 성장률이 1%포인트 감소할 때마다 세수가 1조5000억∼2조원 준다고 추산한 걸 감안, 성장률이 4%에서 2%로 줄 경우 세수 감소분이 3조∼4조원에 달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예산 당국은 그러나 “수정예산안을 짤 때 이미 성장률이 2%대에서 3% 초반이 될 거라고 예상했다”(기획재정부 예산총괄과 관계자)고 말했다. 민주당의 주장만큼 세수 감소폭이 크지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성장률이 더 낮아질 경우엔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엔 예산 당국의 예상보다 세금이 더 잘 걷혔다. 이른바 세계잉여금이다. 10조원을 넘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내년엔 이를 기대하기 어려울 듯하다. “각종 감세안으로 (세계잉여금을) 다 까먹었다”(조세분석과 관계자)고 한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불요불급한 감세를 늦추자”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이 “헌법상 예산편성권이 정부에 있다”며 수정예산안 제출을 압박하는 것과 관련, 한나라당은 “국회에서 논의해 심의·확정하면 된다”고 맞서고 있다. 실제 민주당이 여당이던 2003년 예산 당국이 수정예산안을 제출하는 대신 국회에서 예산을 고쳐 달라고 공식 요청한 일이 있다. 1975년 이래 처음으로 국회 심의 과정에서 증액된 케이스였다(8000억원).

#쟁점 2. 재수정예산안을 12월 중 처리할 수 있나.

민주당에선 “10일 정도면 재정부에서 재수정예산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수정예산안을 마련할 때 그만큼 걸리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재정부가 10일 만에 재수정예산안을 제출할 수 있다면 12월 중 처리는 가능하다. 재정부는 그러나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난색이다. 예산총괄과에선 “수정예산안은 사업을 발굴·추가하는 간단한 내용인데도 내부적으로 20일 준비했다. 민주당의 요구는 사실상 전면적으로 바꾸자는 건데 최소 한 달 이상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재수정예산안을 제출하려면 1월 중에나 가능할 것이란 얘기였다.

#쟁점 3. 재수정예산안이 제출되면 수정예산안은 무효인가.

그렇다. 새로운 안건인 만큼 다시 절차를 밟아야 한다. 국회 상임위별 예비심사→예결위 심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나라당에선 “설령 재정부가 재수정예산안을 낸다고 민주당이 그냥 동의해 주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어차피 다시 지루한 협상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민주당에선 “재수정한다고 쳐도 상임위별로 손볼 것은 평균 2000억원대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 규모라면 금방 심의를 끝낼 수 있다”고 맞섰다.

◆정세균, “위기관리 긴급 구제대책 필요”=정 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서민·중산층·중소기업·지방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게 첫째”라며 위기관리 긴급 구제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지원금 1조2000억원 ▶사회서비스 일자리 지원금 7000억원 증액 등이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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