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브이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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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단원들이 옥정아버지 시체 처리 문제는 좀더 생각해보기로 하고하루 이틀 정도는 관속에 그대로 두기로 하였다. 대명이 단원들과 함께 부르스타에 라면을 끓여 먹고 건넛마을에가서 자물쇠 장치들을 사오면서 준우 편지도 함께 가져왔다.아침나절에 우체부가 한차례 그 집에 다녀간 모양이었다.단원들은 옥정을 가두어두기 위해 지하방에 자물쇠 장치 하 는 것을 뒤로 미루고 준우 편지를 돌려가며 읽었다. …비가 내린다.폐허가 비에 젖는다.폼페이다.폐허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인 마리나 포르타 돌문을 지나니 흐렸던 하늘에서 마침내 빗방울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우산을 준비한 사람들은 우산을받쳐들었지만 대부분 그냥 비를 맞으며 폐허 마을 을 돌아다닌다.이 폐허 마을에는 우산,특히 색깔 있는 화려한 우산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축축히 비를 맞으며 하나의 폐물처럼 돌아다니는것이 더욱 어울리는 편이다.다만 배낭이 젖지 않도록 비닐 덮개를 씌우는 것은 잊지 않았다. 기원후 처음으로 브이(V)세대라는 이름을 얻을 뻔했던 아이들이 갓 태어나거나 한 살에서 열 살 미만의 나이로 한창 자라고있던 AD 79년 8월24일 이른 아침,폼페이 시내에는 화산재들이 조금씩 날리고 있었다.폼페이 시민들은 활화 산인 베수비오산에서 종종 날아오는 화산재 정도로 여기며 어깨에 쌓이는 재들을 손으로 털어내면서 평소처럼 일상생활을 시작할 채비들을 하고있었다. 하지만 얼마후 베수비오 산은 뇌성과도 같은 폭발음과 함께 갈라졌고 삽시간에 시커먼 연기는 구름이 되어 태양을 가렸다.아침의 활기로 넘치던 폼페이시는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화산재와 화산 자갈(화산암 파편)들에 파묻혀 갔다.새들이 공중 에서화산 자갈에 맞아 낙엽처럼 떨어져내렸고,짐승과 사람들이 비명을지르며 숨을 곳을 찾아 달음질쳤다.용암은 헤르쿨라네움시 방면으로 흘러가 폼페이는 용암으로 인한 피해는 보지 않았으나 용암보다도 더 치명적인 유황가스가 시 전체를 뒤 덮기 시작했다.사람들이 숨을 곳을 찾아 들어갔지만 유황가스는 그곳까지 스며들어가사람들을 질식시켰다.불과 삼십분 만에 폼페이의 모든 시민들은 유황가스에 숨이 막혀 죽고 말았다.폼페이에서 발굴된 시체들 중에 손으로 혹은 헝겊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있는 시신들이 많은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로부터 48시간이 지난 후에 태양이 구름을 헤치고 나와 폼페이를 비추었으나 이미 폼페이는 사라지고 없었다.자매 도시인 헤르쿨라네움은 아예 용암에 뒤덮여버렸다. 신은 인간에게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었다.하지만 신은 자연에는 살인을 허용하였다.아니,신은 자연을 통하여 살인을 자행하였다.신 자신에게만 살인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글 조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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