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法的 추궁 좀더 집요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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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노동법 날치기 통과와 그 후속대응 과정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한보비리에서 언급되는 화폐단위와 갈팡질팡하는 정부 태도가 우리를 경악하게 한다.이 강산 곳곳에서 한숨과 한탄의 소리가 들려온다.한숨을 쉬는 이유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으나 법을 가르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사태의 종국적 해결책은 법적.제도적인 것이건만 으레 정치적 미봉책으로 끝내기를 하는 정부의 태도가 또 다른 한탄과 실망을 자아낸다. 노동법의 경우 입법 의무가 있는 국회가 조속히 각 정파와 이해관계집단의 주장을 수렴해 우리 몸에 맞는 새 옷을 만들어내야하거늘 서로 모이지조차 못하고 있으니 이를 어디에 쓸 것인가.또한 관계 부처.국회의원들,심지어 언론기관에 이 르기까지 지금까지도 문제의 노동법 조문을 꼼꼼히 검토해온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노동법 개정은 전형적인 입법작용이므로 입법자와 법률전문가가 해결의 주역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정치논리와 경제논리에 압도되었을뿐 국민에게 아무 책임도 안 지고 성격조차 모호한 노개위(勞改委)말고는 국회나 정부 어느 곳에서도 법리적.제도적으로 충분히 논의된 일이 없다. 한보비리의 경우에도 성급하게 공기업화 운운하던 사람치고 실사(實査)를 했거나 제철소의 자금.기술.시장성등 사건의 내용을 세밀히 파악이나 해보았는지 의심스럽다.이 사건의 경우 경제적으로 한보부도가 국가부도로 이어지지 않도록 따로 대 책을 마련해야 하지만 법률적으론 수뢰나 외압으로 일을 그르친 은행원.공무원.정치인들을 단죄해야 한다.수서사건때 엄한 형사소추를 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법적 장치와 제도적 개선책을 확립했던들 일개 부동산업자인 鄭모가 재기해 이같은 분탕 질은 못했을 것 아닌가. 그러므로 대통령은 최고의 법집행자로서 한보비리가 저질러진 과거시점에 조금이라도 관련되었거나,관련된 자리에 있었거나,이를발견하고도 저지하지 못했던 실무자와 고위감독자인 관계 공무원들의 법적.행정적 책임을 집요하게 추궁해야 한다.매 립 및 공장인허가는 물론 사업성을 검토해 추천 또는 허가해준 실물 경제부처의 공무원,몇 조원의 돈벼락을 내려주는 동안 엉터리 신용평가를 하고 자금을 주물렀던 은행은 물론 이를 지휘감독한다는 은행감독원과 재경원의 공무원,그리고 이러 한 기관을 감사 또는 통제한다면서 비리를 발견 못했거나,어물어물 주의촉구로 끝냈거나,무책임한 발언을 해대는 감사원이나 청와대의 공무원들을 문책해야한다.수뢰수사는 물론 직무유기등의 관점에서도 엄한 징계등이 필요하다. 과거의 검찰수사가 번번이 힘없는 은행장 몇명을 희생양으로 삼고 끝난 것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불만이 얼마나 큰지 알기나 하는가. 이번 사태의 심각성 때문에 수사범위를 넓혀 은행장 외에 사이좋게 여야 정치인 한 명씩을 수사한다고 하면 국민들이 이번에는상부기관과 사전상의해 한 짜맞추기 수사가 아니라 검찰이 소신껏파헤친 것이라고 수긍하겠는가.이 정도의 구태의 연한 수사결과를토대로 당정개편등 정치적 쇼를 해보았자 특단의 돌발사태가 생겨나지 않는한 노동법 파동과 한보비리는 침몰하는 경제와 함께 연말선거까지 쟁점으로 타오를 것이다. 정치적 사태수습이 불필요하다거나 책임을 지우지 말자는 뜻이 아니다.과거에 정부가 사태를 정치적 방향으로만 끌고간 나머지 원인규명,재발방지 및 법적.제도적 개선책 수립에 소홀히 한 것이 무려 몇번인가. 1인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대통령제하에서 별 권력도,영향력도 없는 총리나 당대표를 자꾸 경질해봐도 큰 의미가 없다.여야 정치인을 다 잡아넣고 정계개편을 한들 정당이 국민속에뿌리를 못 내리고 있는 정치현실에서 새로운 이합 집산이 국민에게 희망을 줄리 만무다.한보의 사정권을 못벗어나는 정치인들의 진흙탕 싸움만 치열해질뿐 누구 하나 반성할 리도 없는데 온나라와 국민이 너무 정치에만 휩쓸려 돌아가다 사태의 법적.제도적 개선책 마련은 뒷전으로 밀려 마침내 급변하는 국제사회에서 생존기회마저 상실할까 두렵다. 宋相現 〈서울대 법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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