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따마다] “쭈이, 쭈이 … 한국 의사 무료 시술에 감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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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네이멍구(內蒙古)지역 다싱안링에 사는 위펑허(于風河·66)는 지난달 24일 기자를 만나자 “한국인 의사가 손자의 목숨을 살렸다”며 눈물을 흘렸다. 손자 위보(于博·7)는 김용진(57) 서울대 흉부외과 교수가 이끄는 한국인 의료진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 위보는 2003년과 2005년 두 차례 심장병 수술을 무료로 받아 삶을 되찾았다. 그 전만 해도 살 가망이 없었다. 심장 이상으로 입술과 손끝이 새파래졌고, 주변에선 1년을 넘기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환자가 넘쳐 복도에도 침상을 마련한 하얼빈 시립아동병원의 외과병동. 왼쪽 사진은 심장병에 걸린 양쟈신(楊佳欣7개월여)을 안고 있는 김용진 서울대 교수. 양쟈신은 25일 4시간에 걸펴 심장수술을 받았다. [하얼빈=김민상 기자]


위펑허는 이날 손자의 심장을 진찰하기 위해 기차 등으로 17시간을 달려 김 교수팀이 의료봉사하고 있던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 시립아동병원에 도착했다. 위보를 살펴본 제현곤(37) 서울대 전문의는 “많이 좋아졌지만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혈액이 굳는 것을 막으려면 아스피린과 같은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사를 짓던 위펑허 일가는 위보의 심장병 때문에 흩어져 살고 있다. 부모는 병원비를 구하기 위해 닝보(寧波)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위보는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위펑허는 “그래도 위보가 살아나게 돼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와 제 전문의는 지난달 22~27일 이영일 한·중문화협회 총재 등과 함께 하얼빈 시립아동병원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펼쳐 중국 어린이 6명의 심장병 수술을 했다. 24일에는 생후 19개월인 바이쉬엔청(白軒成) 김 교수의 집도로 심장 수술을 받았다. 김 교수는 국내에 새로운 수술법을 도입해 치료가 어렵던 심장병을 고친 아동 심장병 수술의 권위자다. 보쉬엔청의 아버지 바이칭궈(白靑國·26·농업)는 “한국인 의사들이 무료로 수술해 주지 않았다면 포기했을 것”이라고 고마워했다.

중국에서 아동 심장병 수술을 하기 위해선 5만 위안(약 1000만원)이 든다. 생활 형편이 어려운 중국 농촌 가정에는 상당한 부담이다. 그래서 중국 농촌 가정에서 심장병 어린이들은 치료를 받지 못해 생명을 잃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김 교수는 “미국에서 유학할 때 강한 나라의 힘은 순수한 봉사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귀국 후 가까운 나라부터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1986년 미국 하버드대 부속 보스턴 종합병원에서 1년간 전임의로 근무했다. 귀국 후 99년부터 중국에서 500여 명의 중국 어린이에게 무료 심장병 수술을 해줬다.

2004년부터 김 교수와 인연을 맺은 리화이닝(李懷寧) 하얼빈 시립아동병원 부원장은 그를 ‘사부(師父)’로 모신다. 그는 “스승 이상의 아버지와 같은 분”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가 다음날 수술할 어린이의 컴퓨터 단층촬영(CT) 결과를 묻자 리 부원장은 식사 도중에 알아보러 갈 정도였다.

김 교수의 의료봉사활동에 한·중문화협회도 큰 힘을 보태고 있다. 협회는 2006년부터 한국 정부·기업으로부터 매년 3억원 정도의 기금을 모아 중국 병원에 심장병 수술 비용으로 전달했다. 30명 정도의 심장병 어린이를 치료할 수 있는 비용이다. 이영일 총재는 “한국 의사들이 중국으로 가면 중국 아이들을 한국에 데려오는 것보다 수술 비용을 절감하고, 수술 기술까지 전달할 수 있다”며 “한국인 의사들의 헌신적인 봉사 덕분에 한국에 감사하는 중국인이 많아졌고, 양국 국민의 관계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얼빈=김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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