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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신간을 찾아서] '먹지마, 위험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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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지마, 위험해!
일본자손기금 지음, 이향기 옮김
해바라기, 252쪽, 1만3500원

예쁜 모양의 오렌지가 수퍼마켓 입구 가까이 진열돼 있다. 옅은 오렌지색은 상쾌한 캘리포니아를 떠올리게 한다. 바로 옆 감귤보다 훨씬 세련돼 보인다. 하지만 이 산뜻한 색채에 현혹되지 마라. 깨끗하고 윤이 나는 오렌지 껍질을 만드는 공정은 무시무시하기까지 하다.

일본의 대표적 소비자단체인 ‘일본자손기금’이 펴낸 『먹지마, 위험해!』에 그 과정이 실감나게 묘사돼 있다.

‘처리장에 들어온 오렌지를 먼저 솔질한다. 껍질에 붙은 연한 갈색의 상처딱지 등이 깎여나가 깨끗한 상태로 된다. 이 과정에서 오렌지 껍질에는 많은 상처가 난다. 세포막이 파괴됐기 때문에 이 상태로 그냥 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곰팡이가 생긴다. 그래서 곰팡이가 피지 않도록 살균제를 뿌린 다음 흰곰팡이를 죽이는 왁스를 바르고 열풍으로 건조한다. 그리고 나서 녹색곰팡이를 죽이는 물질을 분무한다.’

일본자손기금은 위험한 화학물질의 조사를 위해 1984년 소비자들의 기금으로 설립된 단체다. 9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선키스트 레몬 처리장에서 베트남 전쟁때 사용된 고엽제 성분인 농약 2-4D를 살포하는 장면을 촬영한 뒤 이를 공개해 유명해졌다. 당시 일본 내 수입 레몬의 가격은 폭락했고 미국과 통상문제로까지 비화
되기도 했다.

이번에 펴낸 책은 일본자손기금이 지난 2002년까지 18년 동안 파헤친 식품의 제조 및 유통과정에 숨어있는 문제점을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며 사진과 함께 묶은 고발서다. 일본의 현실에서 쓴 책이지만, 읽다 보면 번역서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우리 실정과 비슷하다.

좁은 콘크리트 축사에서 위궤양·폐렴 등의 질병에 시달리는 돼지에게 사육자들은 엄청난 양의 항생제를 투여하고, 돼지의 몸에는 항생제가 듣지 않는 내성균이 자란다. 3평 남짓한 공간에 60∼80마리를 몰아넣어 키우는 양계장의 사정도 마찬가지. 항생제를 사료에 섞어 먹인다. 최상급 고기로 치는 ‘꽃등심’을 만들기 위해서는 소에게 먹이는 사료부터 달라야 한다. 녹색 풀을 주지 않고 곡류를 먹여 키운다. 육질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수소는 생후 3∼5개월 지나면 수소를 거세하고 호르몬제를 사용하기도 한다. 미국산 쇠고기는 살을 찌우기 위해 여성호르몬을 사용한다. 임신부가 먹을 경우 태아의 체내 호르몬 균형을 깰 위험이 크다. 요오드나 비타민 등이 보강된 ‘브랜드 계란’을 만들기 위해서는 닭의 뾰족한 부리가 무참히 잘리기도 한다.‘비싼 사료’를 먹다가 흘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수입 농산물은 이동 중에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수확 후에 량의 살균제를 뿌려댄다.

간장의 원료인 ‘탈지 가공 대두’를 만들려면 대두에 휘발성이 강한 헥산이라는 용제를 사용해 기름을 녹여낸다. 사정을 다 알고 나면 먹을 만한 게 없다.

책은 서문에서 “안전한 먹거리를 선택하는 길잡이가 돼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후에 “맞아, 맞아”라며 무릎을 치게 되지만은 않다. 한국소비자연맹이 집필한 ‘식품 표시 알기 쉽게 보는 법’도 부록으로 붙어있지만, ‘어쩌나’하는 답답함은 각오해야 한다.

“값이 비싸도 건강한 사육법으로 돼지를 키우는 생산지의 고기를 구입하라”든가, “몸이 약한 사람은 봉투에 씌워 재배한 사과를 먹도록 하라”는 등의 조언을 지키기에는 우리는 너무나 정보력이 부족한 소비자가 아닌가.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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