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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危授計가 먼저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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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호 35면

요즘 이명박 대통령의 심기가 영 불편해 보인다.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생각대로 일이 안 풀리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청와대 참모와 관료들을 상대로 연일 채찍을 들고 있다. 27일 한나라당 최고 지도부와의 조찬 모임에선 논어에 나오는 ‘견위수명(見危授命)’ 구절을 인용해 공직자의 분발을 강도 높게 촉구했다. 나라에 위기가 닥친 만큼 목숨을 던질 각오로 일하란 얘기다. 대통령이 공직사회에 일침을 가하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의아한 점이 있다. 각종 위기 대책이 효과를 못 내는 게 공직사회의 게으름 탓일까. 그렇지는 않을 거다. 이 대통령은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부지런한 일벌레다. 스스로 ‘얼리버드(early bird)’를 자처한다. 30대 중반 현대건설 사장에 발탁되고 국회의원·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에 선출된 것도 일에 대한 열정 덕분이었다. 이런 대통령 밑에서 열심히 일하지 않는 관료라면 이미 배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 무엇보다 잇따른 상황 판단 미스로 정책 대응을 제대로 못한 탓이 크다. 현 정부 출범 초 ‘거꾸로 환율 정책’으로 물가 불안을 가중시켰을 때만 해도 국민은 그럴 수도 있으려니 했다. 그런데 외환시장의 불안 요인이 하나 둘 불거지면서 ‘9월 위기설’이 퍼졌고,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실제 위기 상황이 닥쳤다. 이 과정에서 외환시장의 달러 부족 우려가 제기됐지만 정부는 ‘세계 4대 외환 보유국’이란 점만 내세워 문제 없다고 강변했다. 미분양 주택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에도 그린벨트까지 풀어 500만 가구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내년 경기를 떠받치려면 재정지출 확대가 불가피한데도 재산세·종부세 등 부유층을 위한 세금 감면 계획을 발표했다. 이 같은 엇박자 정책들이 위기를 키운 요인이다.

위기 국면에서 엉뚱한 정책이 나오는 이유는 정책 목표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747(경제성장률 7%,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경제대국) 공약’에 미련을 두고 있어서다. 공직 사회에선 상층부가 결정한 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걸 금기시한다. 일단 방향과 목표가 정해지면 무조건 따른다. 그런 만큼 방향과 목표를 제대로 잡는 게 중요하다.

이 대통령이 지금 당장 할 일은 혜안으로 위기 타개의 종합대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747 공약은 폐기 선언하고 새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현 정부 조직과 내각은 747 공약에 맞춘 것인 만큼 빨리 바꾸는 게 필요하다. 위기 대처에 적합한 조직을 새로 만들고 널리 인재를 발탁해야 한다. 채찍을 드는 것은 그 다음 일이다. 제대로 된 방향과 목표가 있어야 열심히 일하는 게 의미가 있다. 이 대통령 스스로도 ‘얼리 버드’보다 ‘스마트 버드(smart bird)’가 돼야 한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의 행보가 좋은 본보기다. 요즘 오바마의 일거수일투족은 위기 극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민주당 내 정적인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내정하고, 대선 라이벌이었던 존 매케인 후보까지 끌어안았다. 이어 시장에 신뢰를 줄 인사들을 섭렵해 내각 인선을 하고, 합리적인 위기 수습책을 잇따라 내놓았다. 이런 ‘오바마 효과’ 덕분에 미 증시는 지난주 5거래일 연속 오르며 17%의 폭등세를 기록했다. 미국의 10월 소비지출이 7년래 최대 폭으로 줄고,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25년래 최고치를 기록하는 악재도 이겨냈다.

논어엔 이런 말도 있다. ‘일을 시킬 때엔 시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골라 시키면 된다. 그러면 힘껏 노력하면서 원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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