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불법 정치자금 다시는 발 못 붙이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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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불법 대선자금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막을 내렸다. 지난해 8월 SK 비자금 사건을 계기로 수사가 시작된 지 9개월 만이다. 검찰은 그동안 수사를 통해 현역 의원 23명을 형사처벌하고 지난 대선 당시 여야 후보 진영에 흘러들어간 1000억원 가까운 불법 자금을 밝혀냈다.

이번 검찰 수사는 무엇보다 '살아 있는 권력'인 현직 대통령을 포함한 여야 대선 후보의 불법 정치자금에 대한 최초의 조사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이 과정에서 '차떼기''이적료' 등 정경 유착과 정치권 뒷거래의 추한 모습들이 드러났고,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 혐의도 밝혀졌다. 정치 개혁의 필요성을 그만큼 또렷하게 보여준 것이다. 검찰로서도 과거의 불신과 '정치검찰'이란 오명을 씻고 정치적 중립성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검찰은 어제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노무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에 대해 불입건조치했다고 밝혔다. 盧대통령이나 李전총재가 대선자금 불법 모금에 직접 관여한 증거가 없다는 게 그 이유다. 盧대통령의 경우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헌법 규정으로 인해 조사에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수인이나 주변 인물들에게만 법적 책임을 묻고 선거의 정점에 있던 후보들에겐 면죄부를 줬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한나라당과 盧후보 캠프의 불법 대선자금 규모가 823억여원 대 119억여원으로 마무리된 것도 여전히 시빗거리다.

검찰은 어려운 경제 여건 등을 감안해 기업인들에 대한 처벌을 최소화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고 기업인들이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그 같은 선처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수사는 낡은 관행이던 정경유착의 검은 고리를 끊어내고 정치권.기업이 함께 환골탈태하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정치자금과 기업회계의 투명화를 담보할 수 있는 법과 제도는 어느 정도 정비됐으니 이제부터는 이를 성실히 지켜가는 것이 정치권과 재계가 상생하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