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양심적 병역거부는 무죄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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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법원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다. 서울남부지법의 이번 판결은 병역의무와 관련해서는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가급적 소극적으로 해석해 오던 기존의 판결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다.

때문에 이번 판결이 몰고올 파장은 결코 간단치 않다. 당장 국민개병제도하에서 병역의 의무와 양심의 자유의 충돌을 어떻게 현실적으로 조율할 것이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양심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에서 하나의 소중한 가치다. 병역의 의무 역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공동체 유지에 필요한 의무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역시 중요한 가치다. 충돌하는 두 가치 속에서 개인의 자유의 한계가 어디까지여야 하느냐의 문제다. 그러나 내 자유를 위해 타인이 피해를 받는다거나 더 큰 부담을 질 수밖에 없을 때 그 자유는 어느 정도 제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양심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면 특정 종교를 믿는 신도들만이 아니라 신념에 의한 평화주의자나 사상의 자유를 주장하는 인권론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이렇게 될 경우 헌법이 부과한 국방의 의무가 과연 지켜질 수 있을까 걱정이다. 누구나 군에 가서 몇년간 어렵게 봉사하기보다 양심의 자유를 내세워 편하게 지내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헌법이 보장한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는 국가권력으로부터 최대한 보장돼야 할 불가침적 인권의 성격을 갖고 있다. 또 한국이 가입한 유엔인권위원회의 결의안 등에 양심의 자유에 따른 병역 거부권 인정권고 조항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국가라는 울타리 속에서 공동체를 꾸려간다면 그 공동체가 동의해 만든 협약은 지켜가는 것이 당연하다.

특별히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못하겠다면 그에 상응하는 국가에 대한 봉사는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도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병역의 의무는 나라의 안보와 직접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문제에 관한 상급심의 판결을 예의주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