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서 350원, 서울 시장선 1333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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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 유통인 김종석씨가 사들인 충남 아산의 배추밭에서 13일 오전 인부들이 배추를 세 포기씩 포장망에 담는 출하작업을 하고 있다. [아산=프리랜서 김성태]


 #13일 충남 아산시 배방면의 농민 전흥대(56)씨 배추밭. 35년 경력의 산지 유통인 김종석(53)씨가 일꾼들을 시켜 배추를 트럭에 싣고 있다. 김씨는 이미 8월 말 전씨와 ‘밭떼기(포전거래)’계약을 했다. 전씨 밭(8250㎡)의 모든 배추를 3.3㎡당 3500원에 사는 내용이다. 3.3㎡의 밭에서 나는 배추는 평균 10포기. 포기당 350원인 셈이다. 김씨는 두 달 반 동안 배추를 길러 수확하고 도매시장에 출하한다.

#18일 서울 상도동 성대시장에선 주부 장현덕(37)씨가 김장용 배추 다섯 포기를 9000원에 샀다. 한 포기에 1800원이다. 시장 한편에는 포기당 1000원짜리 배추도 있었지만 장씨는 특상품 배추를 골랐다.

◆배추는 풍년, 가격은 폭락=올 배추 작황은 풍년이다. 11~12월 배추 생산량은 144만t(추정)으로 지난해(114만t)보다 30만t이나 많다. 배추 재배 면적(1만5000㏊)이 21%나 늘어났고, 태풍·장마가 조용히 지나가며 온화한 기후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배추값은 약세다.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11월 거래된 배추 경매가는 세 포기에 평균 3352원(특상품 기준, 포기당 1117원)으로 1년 전(7694원)의 절반 밑으로 떨어졌다.

산지 농민이 받는 배추값이 포기당 350원이라도 소비자가 이 가격에 살 수는 없다. 농민~산지 유통인~중도매인~소매상을 거치며 각종 유통 비용이 붙는다. 산지 유통인은 약 2500~2700포기를 싣는 5t 트럭 1대당 ▶출하 작업비 40만원 ▶포장비 17만원 ▶트럭 운송비 40만원 ▶경매 수수료 6%를 지급한다. 올해처럼 밭떼기 계약 이후 배추값이 폭락하면 산지 유통인이 손해를 보게 된다. 김종석씨는 “배추밭에 깔아둔 돈을 한푼이라도 건지려면 손해를 보더라도 출하할 수 밖에 없다”며 “계약에서 출하까지 두세달이 걸리기 때문에 출하기 가격이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하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 생활을 하다보면 손해볼 때도 있고, 이익이 날 때도 있지만 올해는 손해가 많다”며 “주변 동료들을 보면 2억~3억원 밑지는 경우도 흔하다”고 전했다.

가락시장을 운영하는 서울농수산물공사의 분석에 따르면 배추의 소비자 가격이 1000원이라면 도·소매 상인들이 가져가는 몫(비용+이윤)은 약 400원이다. 서울농수산물공사 성봉기 유통정보팀장은 “배추 한 포기의 무게가 3~3.5㎏으로 다른 야채에 비해 훨씬 무겁고 부피도 크다”며 “장기 보관도 어려워 물류·보관비가 비싸다”고 설명했다.

◆가락시장 경매장은 불야성= “900개…특상품…3500원 낙찰.” 김장철이 되면 토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후 11시 가락시장에선 경매사가 중도매인 수십 명이 들어찬 가운데 배추 경매를 진행한다. 마이크를 잡은 경매사가 카트를 타고 배추 트럭 사이를 돌아다니면, 중도매인들이 전자 리모컨으로 가격을 눌러 입찰에 응한다. 5t 트럭이 200대 이상 몰리기도 한다.

거래 단위는 세 포기씩 포장된 그물망(10㎏ 내외)이다. 속이 알차고 신선한 특상품은 1망에 4000원 넘게 나갈 때도 있다. 하품은 2000원도 받기 어렵다. 낙찰된 배추는 트럭에서 곧바로 재래시장·수퍼마켓 같은 소매상들에게 넘어간다. 농협중앙회 채소팀 김정호 차장은 “도매시장을 이용하면 유통 비용이 많이 든다는 지적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도매시장이 아니면 하루 수만t의 물량을 소화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대형 할인점에선 포기당 500~600원에 배추를 판매하기도 한다. 직거래로 아무리 유통 비용을 줄여도 이런 가격으로 팔면 원가에도 못 미치는 손해다. 대신 고객들이 고추·마늘·젓갈 같은 김치 재료와 다른 식료품·공산품을 사가는 것을 포함하면 이익이라는 게 할인점의 계산이다. 일종의 ‘미끼 상품’이다. 대개 고객 1인당 살 수 있는 배추는 5~10포기로 제한한다.

주정완 기자, 사진=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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