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파문>한보 수사도 수서사건의 再版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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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보그룹 비리의혹에 대한 검찰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외압(外壓)의 실체'에 모든 관심이 쏠리고 있다.특히 한보사건이 6공 최대 의혹사건이었던 수서사건과 뿌리를 같이 한다는 점에서 문민정부 검찰은 과거와 달리 제대로 배후.비 호 세력을 밝혀내야 한다는게 국민적 요구다. 더구나 수서사건처럼 .외압의 실체'는 밝히지 못한 채 변죽만울리다 말아 배후세력에 면죄부(免罪符)만 안겨주는 수사가 될 경우 임기말의 집권층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틀림 없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법조계 주변에서는 이번 사건도.정(政).관(官).경(經)'유착 특혜사건이라는 점에서 수서사건과 흡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어 검찰 수사가 시작부터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같은 우려는 우선 수서사 건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도 대통령의 본격 수사지시가 떨어진 뒤에야 검찰이 부랴부랴 수사 착수를 발표한 것으로 미뤄 수사가 검찰의 적극적인 수사의지로 진행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 근거한다. 지난 23일 한보철강이 부도를 낸뒤 연일 언론과 야당에서 한보그룹에 대한 특혜의혹을 제기하며 수사를 촉구했으나 검찰은 “알아보고는 있다”며 딴청을 피우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27일 이수성(李壽成)총리에게 “철저하고 엄정하게 조 사하라”고 지시를 내린 후에야 수사착수를 발표했다. 수서사건때의 수사착수 배경도 이번과 마찬가지였다.91년 1월21일 서울시가 수서지구 택지 특별공급 방침을 발표한 뒤 언론등에서 일제히 특혜의혹을 제기하자 2월5일 당시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이 감사원에 특별감사 지시를 내렸지만 여론 이 수그러지지 않자 이틀 뒤에 대통령 지시에 따라 검찰이 수사에 나선 것이다.특히 수서사건 당시 검찰은 한보에 대한 특혜의혹이 빗발치자 수사착수를 발표하기 전에 .신병보호'형식으로 鄭총회장을 서울시내 모호텔에 데리고 있으면서도.사전 조사'를 벌이는등 정치권의 지시가 있기 전까지는 외견상 미동도 하지 않았다.본격 수사에 나서기 전에 鄭총회장을 조사해 鄭총회장과 盧대통령의 연결고리는 일단 배제하고 사건을 일부 정치인과 장병조(張炳朝)청와대문화체육비서관 선에서 마무 리짓기 위해 사전정지 작업을 벌인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한 행동을 했던 것이다. 수서사건으로 현직 여야 의원과 청와대비서관등 모두 14명이 한보측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등으로 구속기소됐으나.수사의 성역(聖域)'만 확인시켜준 해명성 수사로 끝나고 말았던 것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 아직 검찰수사가 본 궤도에 오른 것이 아니어서 수서사건처럼 끝날 것이라고 예단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불과 11일만에 사실상 수사를 마무리하고 수사결과를 발표했던 수서사건때와 같이 이번에도 검찰이 축소지향.속전속결(速戰速決)식으로 마무리하려한다면 의혹만 증폭시킬게 분명하다.이런 점에서 벌써부터 검찰 주변에는 이번 수사가 제 대로 되지 않으면 다음 정권에서 철저한 재수사가 불가피하고 그럴 경우 완벽한 수서사건의 재판(再版)이 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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