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북·단청에 스민 명인의 숨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25일 대구 문화예술회관 4전시실. 전시실 왼쪽으로 들어서자 대형 붓이 걸려 있다. 큰 것은 사람 키보다 더 커 보인다.

이 붓을 만든 사람은 모필장(毛筆匠) 이인훈(63)씨. 그는 “가장 큰 붓은 길이 2m에 무게 55㎏으로 세계 최대”라면서 “이 붓은 말 100마리의 꼬리털로 만들었으나 털 모으는 게 어려워 80%를 수입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제안대로 두 손으로 붓을 들어보려 했으나 꿈쩍 않는다.


전시실 벽에는 족제비·청설모·노루·양 등의 털로 만든 크고 작은 붓 50여 종이 즐비했다. 갓난 애의 첫 머리카락으로 만든 배넷머리 붓은 옛날에 혼수품으로 넣어 갔다고 한다. 이씨는 “요즘 TV·영화 속에서 사용되는 김홍도·신윤복의 붓도 직접 만들어 납품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옆방 5전시실로 들어서면 큰북·장고 등 20여 종의 북이 눈에 들어온다. 17세부터 북을 만들어 온 대고장(大鼓匠) 김종문(77)씨의 작품이다. 북 지름이 85㎝인 대고는 만드는데 서너달이 걸렸다고 한다. 알록달록한 단청을 하고 나무와 가죽의 건조·가공에 많은 시간이 소요돼서다.

그는 “환경오염 문제로 피혁공장에 가죽 가공을 의뢰하다 보니 가죽 두께 등 품질이 원하는 만큼 정교하지 못해 좋은 북을 만들기 어려워졌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북 만드는 기술을 아들(49)·며느리(40)에게 물려 주고 있다고 자랑했다.

30일까지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2008 대구시 무형문화재 제전의 모습이다. 대구시가 지정해 육성·보존하는 무형문화재 16종목을 한 자리서 감상할 수 있는 행사다.

4∼5전시실에는 모필·대고 외에 소목·단청과 하향주를 관람할 수 있다. 춤·노래 등이 어우러지는 무형문화재는 공연을 선보인다. 29일 문예회관 앞 마당에서 욱수농악·천왕메기·달성하빈들소리가 공연되고, 같은 장소에서 30일 오후 2시 고산농악·공산농요 등을 만날 수 있다.

이번 행사에 관람객은 감탄을 감추지 못한다. 서예를 한다는 김경준(65)씨는 붓을 둘러보며 “정교하게 만든 붓 하나하나에 명인의 숨결이 느껴진다”며 감탄했다.  

황선윤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