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고파 이창호9단 변신선언 세계대회 3시간제한 맞춰 速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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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이창호(사진)9단은 장고파다.철저한 승부사이면서 집념의 연구가인 李9단은 상대의 강약(强弱)과 기전의 대소(大小)를 떠나거의 초인적이라 할만한 장고의 강행군을 계속해왔다. 이창호가 새해들어 소리없이.변신'을 선언하고 나섰다..표'에서 보듯 올해의 첫대국인 이성재4단과의 대왕전도전기 1국에서 제한시간 4시간의 절반인 2시간을 사용하더니 2국에선 아예 58분을 썼다.후배와의 첫 도전기라 신경이 쓰였을텐 데 슬렁슬렁두었다.지난해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하기 힘든 자세였다. 17일 벌어진 조훈현9단과의 최고위전 도전기 첫판에서도 대국시간은 2시간58분.李9단의 패배로 끝난 이 대국 이후 한국기원 프로들은 비로소 이창호의 변신을 눈치챘다. 李9단은 제한시간이.3시간'인 세계대회에 초점을 맞추고 가능하면 3시간안에 바둑을 끝내는 훈련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이런점은 단기적으로 李9단의 승률을 떨어뜨릴지 모른다.기성전 도전기의 고비판인 21일의 제4국에선 최명훈5단에게 고전끝에 제한시간 5시간중 4시간3분을 쓰고도 2대2로 쫓기게 됐다.그러나바둑계는 李9단의 이런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대국이 과다한 李9단은 무엇보다 대국수를 줄여야 하는데 현실적으로기권은 불가능하다.또 일부러 진 다는 것은 승부에 대한 모욕이며 자기부정이다. 따라서 방법은 한가지.힘을 덜 들이고 바둑을 두는 것이다.승패에 덜 집착하면 대국수도 자연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그 비축된 힘을 국내대회의 10배 규모인 세계대회에 모은다.이때 3시간바둑 훈련도 보탬이 될 것이다. 조치훈9단은 빼어난 실력에 비해 세계대회 성적은 형편없다.趙9단은 8시간짜리 바둑에서도 1백수쯤이면 초읽기에 몰리는 지독한 장고파라서 3시간짜리 세계대회엔 약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모든 대국에서 최후의 1분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조치훈의 무사도적 바둑관은 아직 수정될 기미가 없다.그러나 전략의 대가 이창호는 자신의 방향을.3시간바둑'으로 분명히 정했다.李9단의 방향수정이 국내바둑계에 어떤 변화를 몰고올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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