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 아이들 ‘쉼터와 아쉬운 이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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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닫게 될 저소득층 자녀들의 방과후 공부방인 대전푸른학교에서 학생들이 요가를 배우고 있다. [대전푸른학교 제공]

저소득층 자녀들의 방과후 보금자리가 돼 주었던 대전의 한 무료공부방이 재정적 어려움으로 결국 문을 닫게 돼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23일 대전시 동구 홍도동에 위치한 무료공부방 ‘대전푸른학교’ 사무실 앞에는 ‘세 놓음’이라고 적힌 종이만 붙어 있을 뿐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대전푸른학교 교사 최원석(37) 씨는 이날 “지난달 말 아이들과 마지막 수업을 마친 뒤 세를 놨다”면서 “비품과 집기는 다른 공부방에 넘겨주고 내달까지는 모두 정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전푸른학교는 2006년 5월 1일 문을 열었다. 2년 6개월여 만에 문을 닫게 된 것이다.방과후 학원을 가지 못하거나 점심을 거르는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해 평범한 주부였던 서민선(36) 씨가 사비를 털어 대전시 동구 홍도동 20평 남짓한 사무실에 무료공부방 ‘대전푸른학교’를 열었다.

푸른학교는 경제난에 허덕이는 부모가 마음놓고 일할 수 있도록 초등학생을 상대로 방과후 학습지도와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공부방으로 서울·경기·전북 등 지역에 여러 곳의 지부를 두고 있다.대전에서는 서씨가 처음 문을 열었다.

초기에는 작은 사무실에 책상과 칠판만 놓고 선생님 2명, 초등학생 7명이 모여 조촐하게 입학식을 치렀다.입소문을 타고 대전푸른학교가 아파트 등 인근 주택가에 퍼지자 점차 아이들이 늘면서 도움의 손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덕택에 개원한 지 1년만인 지난해 5월에는 사무실을 30평으로 넓혀 이사를 했다.서씨의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의 후원을 받아 새롭게 리모델링도 했다.

그러나 비인가시설이었기 때문에 시로부터 재정 지원은 받을 수 없었다.월세를 포함해 매달 100만원 이상 드는 운영비는 모두 개인후원금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었다. 최원석 씨는 “공부방 사정을 잘 아는 주변의 지인들을 통해 5000원, 1만원씩 후원금을 받기도 했고 학부모들이 김치나 밑반찬 같은 부식거리를 가져오기도 해 학교 운영은 수월했다”고 말했다.그러나 올들어서 부터 사정이 달라졌다.경기가 좋지 않아 평소 후원을 해 주던 지인들의 후원금이 줄어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5월부터는 2명이었던 상근교사마저 1명으로 줄어 최원석 씨 혼자 급식부터 수업까지 모두 도맡아 하는 형편이었다. 최 씨는 “미술수업과 같은 특기과목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지만 급식과 기초학습을 담당할 상근교사가 필요한데 매달 정기적으로 월급을 주기에는 공부방 형편이 너무 어려웠다”며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쉼터가 돼 주었던 공간이 사라지게 돼 아쉽다”고 말했다.

서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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