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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를움직이는사람들>46.태광산업그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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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작지만 강한 것(Not big but strong)'.
새해초인 지난 3일 태광산업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기화(李基和)회장의 취임일성이다.외형 성장보다 내실을 다져나가자는 의미다. 신임 회장의 이같은 경영철학은 지난해 11월 타계한 창업주이임룡(李壬龍)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고(故) 李회장도“기업인은 기업만 열심히 해 수출에 기여하는게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길인만큼 다른데 신경쓸 필요가 없다”며 내실경영을 강조했다.
고 李회장은 또.기업은 절대 정치와 연결돼선 안된다.사업 외에는 절대 한눈팔지 말자'는 것을 신조로 삼았다.
태광은 실제 정치와 연을 맺지 않고 기업활동을 해왔다.
사풍(社風)도 지극히 보수적이다.최근의 경영권 변화에도 불구하고 태광은 이같은 사풍을 지키고 있다.
태광산업그룹은 75년부터 서울장충동의 옛 동북고 교사(校舍)를 사옥으로 쓰고 있다.사옥을 찾기도 쉽지 않고 안내간판도 없다..태광 에로이카 소비자상담본부'라고 써있는게 전부다.
8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랭킹 47위(95년 자산기준)의 그룹 본사로 보기엔 너무 초라하지만 그룹측은“아직 쓸만하다”고 말한다. 신임 회장의 취임식도 고 李회장의 49재 이후에야 치렀다.두달여 경영 공백기에는 이기화 당시 태광산업사장이.회장 대행'을 맡아 그룹을 이끌어왔다.
대외홍보도 일절 않는다.신임 회장 취임때는 물론 창업이래 보도자료를 낸 적이 없다.
그러다보니 섬유가 주력산업인데도 태광에로이카 오디오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더 알려져 있다.95년 주가(株價)가 무려 76만원까지 수직 상승해.초귀족주'가 돼서야 일반인들에게 알려졌다.
李회장은 요즘 임직원들에게“일당백의 실력을 갖추라”고 요구한다.기업은 키우되 경비는 최소한으로 줄이는 근검절약형 경영도 강조한다.
태광의 주력인 섬유부문의 임원도 20명에 불과하다.
섬유 외길을 걸어온 태광의 발자취는 54년 고 李회장이 부산에서 중고 제직기 10대로 태광산업사를 차리면서 시작됐다.
60년대 이후엔 아크릴로 시작해 폴리에스테르.스판덱스.나일론.카본파이버등으로 품목을 다양화해 나갔다.
60~70년대 섬유호황기에 내놓은 신제품마다 수요가 때맞춰 급증한데 힘입어 태광은 국내 최대 섬유업체로 성장했다.
고 이임룡회장은 이에대해“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태광은 70년대 고려상호신용금고.흥국생명.대한화섬.천일사(현재는 태광산업내 전자사업부로 통합)를 잇따라 인수하며 계열사를 늘려왔다.
88년에는 한보관광개발(현 태광관광개발)을 인수했다.
지난해 그룹 매출은 3조7천억원.이중 섬유부문의 비중이 절반을 넘으며,대부분 해외로 수출된다.스판덱스는 듀폰에 이어 세계2위의 시장점유율을 자랑하고,나머지 섬유제품도 세계 10위권내에 든다.
태광산업은 은행돈을 거의 한푼도 안쓴 기업으로 유명하다.그룹에서는 무리한 사업확장보다는.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넌다'는 고이임룡.이기화 회장의 경영방침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방침은 95년 울산의 석유화학 1공장 완공때까지 지켜졌다. 올해 4월 완공예정인 2,3공장 건설을 위해.약간'의 은행돈을 썼으나 금융비용 부담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태광은 구(舊)권위주의 정권시절 세무사찰을 여러번 받았다.
이는 오랜 야당생활을 한 이기택(李基澤)민주당대표가 고 李회장의 처남이자 이기화 현회장의 친동생이라는 관계 때문으로 보는시각이 지배적이다.
태광은 그러나 이 때문에 정치와 더욱 거리를 유지하며.정도(正道)'만을 고집해.털어도 먼지 안나는 기업'을 만들어왔다고 한다. 실제 세무사찰이 끝나면 공무원들이“오히려 포상을 줘야겠다”고 말했을 정도라고 한다.
이기화회장은 고 李회장의 처남.서울대 화공과 졸업후 다른 회사에 잠깐 근무하다 59년 태광산업 상무로 그룹에 발을 들여놓았다. 80년부터 태광산업및 대한화섬 사장을 맡아오다 연초 회장에 취임했다.
국내 섬유업계의 원로로,신규사업진출등 회사 성장과정에서 고 李회장을 충실히 보좌해 오늘의 태광을 일궈낸 공신이다.
이때문에 그룹에서는 그를 고 李회장의 창업동지로 부른다.
고 李회장은 생존시“능력있는 사람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겠다”는뜻을 여러차례 비췄었다.
경영권이 창업주의 장남 이식진(李埴鎭.49)부회장에게로 가지않은 것도 고 李회장의 뜻이라고 그룹측은 설명한다.
그룹 관계자들은 최근의 어려운 섬유쪽 경영환경을 감안해 경륜있는 李회장이 회장직을 맡았다고 보고 있다.
그의 나이가 이제 만63세인 점을 감안하면 현체제가 상당기간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그러나 언젠가는 창업주의 장남인 李부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李회장은 현장경영을 중시한다.매달 한번 부산.대구.경주.구미등에 흩어져 있는 13개의 공장을 2박3일 일정으로 방문한다.
현장에서는 근로자들과 구내식당에서 식사도 같이 하고,결재도 현장에서 한다.
서울 본사까지 결재받으러 오면서 업무가 지연되는 것을 막자는뜻에서다.
李부회장은 지난해까지 태광산업 전무로 근무하다 연초 인사에서세 단계 승진했다.74년 태광산업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수출.영업.자재부등을 두루 거치며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지방사무소와 뉴욕지사에서도 근무했으며,85년부터 태광산업및 대한화섬 전무를 맡아왔다.
연초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태광산업 뿐 아니라 금융.레저까지총괄하게 돼 명실상부한 후계자수업을 받게 됐다.
***매달 현장 내려가 결재 이호진(李豪鎭)태광산업및 대한화섬 사장은 고 李회장의 3남.서울대경제학과를 졸업한뒤 미국 코넬대 경영학석사(MBA)에다 뉴욕대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93년 이사대우로 흥국생명에 입사,이 회사 상무를 거쳐 주력사인 태광산업 사장으로 선임돼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경영능력도 갖췄고,국제감각.정보력도 탁월하다는 평이다.흥국생명에 근무할 때 팀제를 도입하는등 경영혁신에도 관심이 많다.
검소하고 소탈한 성격으로 아랫사람들에게도 꼭 존대말을 쓴다.
창업주의 2남 영진(榮鎭)씨는 흥국생명 차장으로 근무하던중 94년 사고로 타계했다.
태광산업그룹은 고 李회장의 인척과 2세들이 중심이 돼 움직인다. 사내에 특별한 공식 의사결정기구는 없다.주요 사안은 회장과 창업주의 두 아들등 세사람이 의논해 결정한다.
태광의 전문경영인중에는 부산 출신이 많다.창업을 부산에서 한때문이다.인사스타일도 보수적이어서 외부영입인사를 찾아보기 어렵고 평생직장이 거의 보장된다.
흥국생명의 반성우(潘成雨)사장이 유일한 영입케이스.
李회장의 부산고 동기동창이라는 연으로 91년 고려상호신용금고사장을 맡으며 태광에 합류했다.
농협에 오랫동안 근무했으며 68년에는 대통령 경제담당비서관을지내기도 했다.
한때 정치에 뜻을 둬 88년 거제에서 출마했던 경력도 있다.
친화력이 뛰어나며 매달 정기적으로 여직원.생활설계사와의 대화시간을 갖는다.
강석명(姜碩明).최운형(崔運炯)태광산업 부사장은 공채 1기 출신의 선두주자들.姜부사장은 입사 이후 줄곧 부산지역의 현장에서 근무해 왔으며 영남지역 12개 공장을 관장한다.
93년 대표이사로 승진했다.崔부사장은 국내외 영업을 주로 맡아왔다.영어에 능하며 서울본사를 총괄하고 있다.
***2,3공장 4월완공 예정 태광산업그룹은 기업을 다지고 다지며 튼튼히 성장해 왔지만 최근 경영여건은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이다.
섬유산업의 전반적인 위기적 상황에서 태광도 예외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리부담이 거의 없을 정도로 탄탄한 그룹인만큼 국내 기업중 상대적으로 여건이 좋은 편이라고 봐도 될 것같다.
태광이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선택한 것은 울산에 석유화학공장을 건설해 현재 약60%에 이르는 섬유쪽의 비중을 줄여 사업다각화에 나서겠다는 것.
93년부터 6천억원을 투자해 1공장은 완공됐고 2,3공장은 4월 완공된다.향후 석유화학을 주력산업으로 삼겠다는 복안이다.
올해는 안양지역 케이블 TV진출계획도 갖고 있다.
李회장 체제의 새로운 경영진이 석유화학사업의 정착을 통한 탈(脫)섬유사업 다각화를 어떻게 정착시켜 나갈지 주목된다.

<신성식 기자><다음은 강원산업그룹> ***알림 기획시리즈.재계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지난해 9월말까지 30대그룹편을 연재한데 이어 지난해 10월초부터 31대이후 그룹편을 연재하고있습니다.31대 이후 그룹의 게재일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신호=96년 10월4일▶미원=10월11일▶삼양=10월18일▶삼환=10월25일▶아남=11월1일▶청구=11월7일▶거평=11월14일▶동양화학=11월21일▶한글라스=11월28일▶조선맥주=12월4일▶새한=12월11일▶대한전선=12월18일 ▶동국무역=12월25일▶통일=97년 1월8일▶동원=1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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