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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한 몽상가에서 비전과 설득의 리더로 다시 태어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9호 31면

올 7월 3일 트윈 오크스 공동체 건립의 핵심 인물이었던 캐슬린 킨케이드(사진)가 78세의 나이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보름 후 이웃 루이자의 한 교회에서 열린 추도식도 평생의 철학마냥 아주 조촐하게 치러졌다. 그와의 이별에도 불구하고 그가 줄기차게 품어온 공동체적 비전과 도전에 이끌려 왔던 트윈 오크스 주민과 이웃 루이자 마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는 영원히 살아 숨쉬게 될 것이다.

트윈 오크스 설립자 캐슬린 킨케이드

‘캣’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킨케이드는 1930년 미국 시애틀에서 태어났다. 워싱턴대에 재학 중이던 19세 때 만난 한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으나 곧 헤어진 뒤 네 살 된 딸과 함께 멕시코시티로 이주해 초등학교 영어교사로 5년간 일했다. 30세가 되던 해인 60년에 다시 LA로 이주해 직장 생활을 하던 중 포크댄스에 푹 빠지게 된다. 이 ‘춤에 미친 것’이 계기가 되어 당시 12세였던 딸과 함께 극단 아만의 일원이 된다.

이 즈음에 킨케이드의 인생을 뒤바꾸게 한 책과 조우하게 되는데, 바로 심리학자 스키너의 이상사회 소설 『월든 2』였다. 그는 『월든 2』 모델이야말로 완벽한 평등을 현실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이상적 공동체 모델이라는 비전에 사로잡히게 된다. 67년 그는 드디어 자신과 꿈·비전을 같이하는 7명의 젊은이와 함께 꿈을 실현할 곳을 물색하던 끝에 버지니아주 오지 마을인 루이자 근처에 트윈 오크스의 터를 잡게 된다.

공동체 건립 초기의 어려움은 예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1주일을 25센트로 버텨야 하는 극심한 내핍의 생활은 물론 때로는 공동체의 존립을 위해 왕복 4시간이 걸리는 리치먼드까지 시급제 일을 하러 다녀야 했다. 그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뜻을 같이하던 동지의 배반이었다. 철석같이 믿고 의지하던 이들이 하나 둘씩 이런저런 문제를 일으키며 떠나가는 아픔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비전과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그는 이상적 공동체에 대한 순진한 몽상가에서 그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강력한 비전 설교가와 설득의 리더로 변모해 갔다. 이러한 킨케이드의 헌신과 섬김의 리더십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트윈 오크스는 불가능했다. 그는 트윈 오크스 외에 이와 유사한 공동체인 이스트 윈드(East Wind)와 에이콘(Acorn)이 세워지는 데도 중심적 역할을 했다. 킨케이드는 트윈 오크스 공동체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두 권의 책 『월든 2의 실험(A Walden Two Experiment)』(1973)과 『이래도 유토피아인가(Is It Utopia Yet?)』(1994)를 썼다.

킨케이드는 평생 음악가이기도 했다. 전문적 훈련을 받지 않았음에도 노래와 작곡은 아마추어 수준 이상이었다. 전통적 의미의 교회 신자와는 다른 그였지만 이웃 루이자 마을 교회 예배에 참석해 성가대원으로도 활동했다. 조그만 대안 공동체의 실현을 위해 쏟아 부은 그의 비전과 정신은 트윈 오크스의 울을 뛰어넘는 홀씨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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