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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군기 잡기의 추억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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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호 35면

요즘 아이 낳아 ‘첫째야’ ‘둘째야’라고 대충대충 이름 짓는 부모는 없을 거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제품 만드는 것보다 더 고심해 짓는 게 기업 이름과 브랜드라고 한다.

그런데 인가순으로 회사 이름을 지은 사례가 있다. 19세기 말 일본이 각지에 은행을 세우면서 그랬다. 번거롭게 무슨 이름을 하나하나 다 붙이느냐, 그냥 번호순으로 하자.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치(澁澤榮一)가 1872년 국립은행 조례를 만들면서 정한 룰이다.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무식하고도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인가서류에 도장이 쾅 찍히는 순간 자동적으로 은행 이름이 정해졌다.

기업 이미지(CI)에선 빵점이었던 셈이다. 딱 하나, 다이이치(第一)은행을 빼고는. 이 룰을 정한 장본인 시부사와는 가장 폼 나는 이름의 다이이치 은행장을 지냈다.

당시 세워진 은행들은 모두 민간은행이었지만 국립은행으로 불렸다. 정부 허가를 받아 화폐 발행 기능을 지니고 있었다는 게 요즘의 민간은행과 다르다. 국립은행은 미국의 내셔널뱅크를 번역한 말이다. 원래는 연방법에 근거해 설립된 은행을 가리킨다. 나라가 설립했다는 뜻이 아니다. 그래서 메이지 정부도 처음엔 그냥 국(國)은행으로 하려 했으나 어감이 어색하다며 ‘립(立)’자를 붙였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1872~1876년 일본 열도에선 1번에서 153번까지의 은행이 난립했다. 이들을 ‘넘버 은행’이라고 한다. 지금도 8곳이나 남아 있다. 다이산(第三), 다이시(第四), 주로쿠(十六), 주하치(十八), 시치주시치(七十七), 하치주니(八十二), 햐쿠고(百五), 햐쿠주시(百十四)은행이 그것이다. 일본에 가면 길거리에서 숫자만으로 된 은행 지점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다. 모두 130년 넘게 살아남은 유서 깊은 곳들이다.
넘버은행은 대대적 합병 쓰나미에 휩싸인다. 발권 기능을 지닌 은행이 너무 많아 인플레가 일어나자 자연스럽게 정리가 이뤄졌다. 20세기 초 대공황 때 도태된 곳도 많다.

첫 번째인 다이이치은행은 나중에 간교(勸業)은행과 합쳐 다이이치간교은행이 됐고, 다시 합병을 거쳐 지금은 미즈호은행으로 남아 있다. 합병은행의 이름을 지을 때도 숫자를 자주 썼다. 예컨대 1931년 다이주큐(第十九)은행과 로쿠주산(六十三)은행이 합쳐 하치주니(八十二)은행이 됐다. ‘19+63=82’라는 것이다. 원조 하치주니은행은 1929년 다른 데로 합병되는 바람에 82라는 숫자가 마침 비어 있었다. 또 13, 34, 148번째 은행이 1933년 합병했을 때는 세 은행이 합쳤다며 석 삼(三)과 화할 화(和)를 붙여 산와(三和)은행이 됐다. 단순해 보이지만 합병은행 이름 때문에 다투는 것보다 훨씬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얼마 전 전광우 금융위원장이 은행들의 짝짓기를 거론했다. 은행들을 합쳐 메가뱅크를 만들겠다는 뜻인 모양이다. 정말 머잖아 새 은행이 태어날지, 아니면 은행들 군기 좀 잡으려 해 본 말인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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