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100년사>2.축음기의 위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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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에디슨의 축음기 발명은 왁스를 입힌 종이 디스크에 모르스부호를 기록하기 위한 실험의 부산물이었다.원반형 디스크를 고안해낸에밀 베를리너(1851~1929)도 처음엔 자신이 개발한 기계의 용도를 제대로 몰랐다.그는 축음기를 가리켜. 말하는 장난감'이라고 부르곤 했다.
1890년대 런던.파리등 대도시 번화가에서는 축음기에 이어폰을 연결해 놓고 손님들이 동전을 넣으면 녹음을 재생해 듣는 업소들이 생겨났다.녹음은 지금처럼 음악보다 휘파람으로 연주한 노래나 만담.민요등이 대부분이었다.
또 한가지 염두에 둬야할 것은 레코딩 역사를 살펴보면 대중음악이 음반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요즘과는 달리 초창기에는 대부분의 녹음이 클래식음악이었다는 사실이다.
1890년 러시아를 방문한 에디슨은 저명한 음악가들에게 자신이 발명한 축음기를 보여주었다.작곡가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축음기의 위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축음기를 들어보고 이 천재의 발명품에 놀랐다.나는 음악가로서 이 기계의 음악적 가능성을 충분히 예견한다.음악작품의 뛰어난 연주와 아름다운 목소리,민요나 즉흥연주를 정확히 재생할 수있다는 사실은 음악에서 엄청나게 중요하다.축음기는 빠르기를 조절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도 갖고 있다.위대한 에디슨에게 영광있으라!”그가 에디슨에게 써준 추천장의 내용이다.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예측은 정확했다.1894년 러시아의 민요연구가 예브게니리네바는 축음기를 들고 볼가강 유 역에서 민요를 수집해 악보로출간했다.헝가리 작곡가 바르토크와 코다이의 민요수집도 축음기가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축음기 발명 이후 음악가가 남긴 최초의 녹음은 1888년 당시 12세던 폴란드 태생의 천재 피아니스트 요제프 호프 만이 에디슨의 스튜디오를 방문해 녹음한 피아노연주.
또 1893년 브람스가 세상을 떠나기 4년전 피아노연주로 직접 녹음한.헝가리춤곡'이 1935년에 발견됐다.프랑스에서는 1894년 에밀 파테가 파리 교외에 음반사를 설립하고 스코틀랜드출신의 소프라노 메리 가든(1874~1967)등 유명 성악가의연주를 녹음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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