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상당 규모 뺄 수밖에 없다" 美, 2003년 9월 한국에 통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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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지난해 9월 상당 규모의 주한미군을 한국에서 철군시킬 수밖에 없음을 한국 정부에 통보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한국 정부는 이에 따라 주한미군 감군 계획의 발표 여부를 미국 측과 협의했으나 미국 측이 난색을 표시하는 바람에 발표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유인태 전 청와대 정무수석(17대 총선 당선자)은 19일 "지난해 9월께 미국 측이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GPR)의 일환으로 장비와 화력 등의 전력을 보강한다는 전제로 주한미군의 상당수를 한국에서 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국방부 채널을 통해 우리 정부에 알려 왔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정부는 당시 장기적인 계획 아래 단계별로 주한미군을 철군시키는 것인 만큼 오히려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이 맞다는 논리를 내세웠으나 미측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끝까지 발표를 거부해 발표는 물론 세부적인 후속 논의도 뒤로 미뤄지게 됐다"고 말했다.

미측이 구상했던 감군 규모에 대해 柳전수석은 "당시로서는 구체적인 숫자나 시기를 거론하는 단계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고 설명했다.

미측이 주한미군 감축을 통보해 온 지난해 9월에는 서울에서 제4차 미래 한.미 동맹 정책구상 회의(3~4일)가 개최됐으며 당시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부차관보가 방한했다.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과는 별개로 주한미군의 장기적인 감축에 대해 이미 한.미 정부 간에 원칙적 합의가 이뤄졌던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올해 재개될 것으로 예상되는 양국 정부의 주한미군 감축 논의는 이 같은 큰 원칙 아래 구체적인 철군 규모와 절차, 전력 보강 방안 등을 집중 논의하게 될 전망이다.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도 18일(미국시간) 미 상원 외교위의 이라크 청문회에 참석해 "전 세계적으로 미군의 배치를 재구성하는 문제와 관련, 우리는 아시아의 동맹들과 일정 기간 논의해 왔다"며 "한국에서는 이미 미군의 위상에 대해 부분적인 재조정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비무장지대의 미군 역할에 대해 "솔직히 소용도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역효과가 나는 인계철선 기능 외에는 아무 역할도 못 하고 있어 후방으로 이동시켰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은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GPR)과 관련, 한국이 네개 분류 기준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전력투사거점(PPH)과 주요 작전기지(MOB)의 중간 또는 MOB에 속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정부 관계자가 19일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은 지난 2월 7차 미래 한.미 동맹 정책구상 회의 때 "아직은 구상 단계"라며 이런 설명을 해왔다고 전했다.

미국은 요격용 미사일인 패트리엇 미사일 2개 중대와 미 35항공여단 소속 병사 350명을 내년까지 한국에 배치할 계획이라고 국방부 관계자가 전했다.

최훈 기자,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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