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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포츠클라이밍의 대들보 김병구.고미영씨 부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영화 ‘클리프 행어’의 첫 장면-로키산맥 산악구조대원 실베스터 스탤론은 조난당한 동료를 구조하기 위해 수직으로 깎아지른 암벽을 맨손으로 오른다. 관객은 스크린 가득한 로키산맥의 장엄함과 함께 곡예에 가까운 그의 기술에 감탄을 보낸다. 맨몸으로 자연에 맞서는 암벽타기는 한계에 대한 도전 그 자체이기에.

인공암벽타기는 자연암벽을 타는 사람들의 겨울훈련을 위해 시작됐는데 이젠 레포츠로 자리잡았다. 유럽·미국등지에서는 스포츠 클라이밍이라고 불리면서 많은 프로선수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성행중이다. 올림픽 예비종목에도 포함됐다. 그러나 우리나라 인공암벽 선수들은 자기 자신과는 물론이고 세인의 무관심과도 싸워야 한다.

김병구(36)·고미영(31)씨 부부는 한국 스포츠 클라이밍의 선구자들이다. 경기도 군포에 있는 그들의 훈련장을 찾았을 때 미영씨는 벽과 천장에 달라붙어 땀을 흘리고 있었다. 작은 홀더(손잡이)를 잡고 중력을 무시한채 매달려 훈련하는 모습은 스파이더맨을 연상케 했다.

미영씨는 국내 여성 스포츠 클라이밍의 1인자다. 아시안컵 2년 연속 준우승, 지난해 월드컵 시리즈에서 두차례 14위를 차지했고, 현재는 세계 랭킹 18위. 병구씨에게 암벽타기를 배웠다.

두 사람의 인연은 산에서 시작됐다. 89년 북한산을 혼자 찾은 미영씨는 길을 잃어 일반인들이 다니기 힘든 바위능선으로 잘못 들어섰다. “그때까지도 초보여서 고생하다 암벽등반후 하산중이던 병구씨 일행의 도움으로 무사히 하산했어요. 그걸 계기로 병구씨에게 암벽등반을 배우게 됐지요.”

79년부터 암벽등반을 해온 베테랑 산악인 병구씨는 미영씨와 함께 산에 대한 열정과 더불어 사랑을 키워나갔고 두사람은 92년에 결혼했다. 91년 인공암벽을 시작한 미영씨는 하루 4시간이상 힘든 훈련을 했다. 한때 70kg이 넘던 몸무게가 49kg까지 빠졌다. 그녀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94년. 첫 국제대회인 일본 오쿠라대회에서 당당 2위에 올랐다.

“전문인구 1천명에 불과한 우리 상황에서 이런 성적을 낸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일본의 경우 전문인구가 수만명 수준인데다 전국체전에도 이 종목을 포함시켜 정부가 매년 10억엔을 지원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인공암벽타기는 높이 15m이상의 인공암벽을 8분간 얼마나 높이 오르느냐로 승부를 가린다. 홀드의 위치와 암벽의 형태를 다양하게 바꿔 경기를 치른다. 워낙 코스가 어려워 중간에 추락하는 선수가 대부분이다. 다양한 인공.자연암벽에서 훈련하는 것이 필수다. 그러나 우리는 국제규격 인공암벽은 손가락에 꼽히고 훈련에 도움이 되는 자연암벽은 전남선운산에 몇군데 있을 정도다. 이런 여건에서 미영씨가 거둔 성적은 기적에 가깝다.

"매일 수원의 직장(농업공무원교육원)을 마치고 오후6시부터 노량진에 가서 연습을 했습니다. 안양 집으로 오면 한밤중이더군요." 미영씨의 말이다.

미영씨의 훈련장소가 없어 안타깝던 병구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지난해 6월 군포에 암벽훈련장을 열었다. 미영씨는 이곳에서 예전처럼 오후6시부터 10시30분까지 훈련한다. 10여명 회원에게 회비를 받고 운영하지만 생활은 미영씨의 월급으로 근근이 이어간다.

"대기업의 지원을 받으며 전업선수로 뛰는 유럽.미국 선수들을 따라잡는건 너무 어려운 일이에요. 아시아권 다른 나라에서도 정부차원의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데 우리는 협회 예산이 없어 국제대회에 못나갈 정도입니다. 지원과 관심이 뒤따른다면 세계 10위권은 문제없는데..." 이들은 후배들이 빨리 미영씨를 추월해주길 바란다. 그것이 우리 스포츠 클라이밍이 무관심을 딛고 당당한 스포츠로 자리매김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산악정신은 무한대에 대한 도전입니다.우리는 오르는게 좋기 때문에 산을 오릅니다." 이들은 미영씨가 선수생활을 마치면 순수 산악인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윤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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