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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직후 오바마가 해야 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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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후보의 당선은 미국 역사상 획기적인 일임에는 틀림없다. 사상 최초의 흑인 후보였다는 점, 무엇보다 여전히 미국의 정치체제가 변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는 면에서 의미가 크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공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라크전쟁 실패와 그에 따른 국제사회의 미국에 대한 의식 변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문제로 야기된 금융위기 등으로 미국은 냉전 종식 후 가장 심각한 고립상태에 놓여 있다. 미국이 여전히 세계 유일 초강대국임에는 틀림없지만 세계의 지도국으로서 누구나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됐다.

이런 가운데 젊고 지적인 지도자가 돌풍을 일으키며 등장했다. 미국 내의 오바마 인기 못지않게 전 세계인의 기대 또한 크다. 이라크전쟁에 찬성한 국가와 반대한 국가, 그리고 많은 이슬람 국가들도 오바마의 당선을 환영했다. 미국은 부시 행정부 시절 무너진 미국의 국제적 위신을 한꺼번에 회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은 것이다.

미국이 앞으로 위엄과 신뢰를 구축함으로써 세계에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여부는 향후 오바마의 정권 구상, 취임 직후의 성과에 달려 있다. 지금의 세계 정세가 결코 미국에 만만한 상황은 아니다. 미국이 힘든 상황에 빠진 것이 꼭 부시 행정부가 무능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겹쳤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현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오바마 행정부에 유리한 국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첫째, 세계 경제가 사상 초유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누가 봐도 명백한 위기상황에서 지도자는 대담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경제면에서 지금보다 훨씬 자유롭게 정부가 하고 싶은 정책들을 제시할 수 있다는 얘기다.

둘째, 대선과 동시에 치러진 상·하 양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 의회가 대통령 생각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처음 6개월 동안은 대통령의 의향을 반영하는 입법이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셋째, 지금까지 오바마 후보가 주장해온 외교노선을 거부할 나라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미국의 주장을 관철하려 했던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와 결별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오바마 정권의 외교정책은 많은 국가의 지지를 받을 것이다.

대외적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우선은 세계 경제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주요국과의 협조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밖에도 부시 행정부가 나 몰라라 했던 지구온난화 대책 문제에 정면으로 대응해야 한다. 안전보장 면에서는 이라크의 안정을 유지하면서 철수를 현실화하고, 아프가니스탄 정세를 안정시켜야 한다. 동북아시아에서는 중국과의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북한의 핵개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몰고 가야 한다.

오바마 앞에는 이렇게 많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들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행정부 출범 직후 국민의 지지를 재확인함과 동시에 세계 각국의 지지와 협력을 얻어야 한다. 미국 혼자 해결할 수 없는 과제가 많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이례적일 수도 있지만 오바마는 행정부 출범 직후 가능한 한 빨리 대규모 순방계획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젊은 지도자를 맞는 미국은 무엇보다도 세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는 세계가 미국의 리더십을 받아들이는 기반이 될 것이다.

다나카 아키히코 도쿄대 교수
정리=박소영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