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인질극 한달만에 대화 국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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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국제사회에서 인질극이 한달을 넘긴 일은 드물다.게릴라들에 의한 납치.인질극이 잦은 남미에서 1년여를 끈 경우가 간혹 있긴하다.하지만 수백명을 인질로 한 테러극이 장기화된 예는 찾기 힘들다. 한때 이원영(李元永)한국대사등 2명의 한국인도 인질극의 대상이 됐던 페루주재 일본대사관저에는 현재 페루 외무장관.
페루주재 일본대사등 주로 페루인과 일본인 74명이 아직도 붙잡혀 있다.
지난달 17일 사건이 일어난지 1개월째나 된다.최근에는 국제적십자사가 공급하는 음식물 양을 줄여줄 것을 요구,인질들은 물론 게릴라들도 건강이 극도로 쇠약해져감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투팍 아마루 혁명운동(MRTA) 소속 반군지도자 세르파는 페루TV와의 인터뷰에서“정부의 협상중재위원회 구성제의를 수락할 만하다”고 밝혔다.속으로야 어떻든 그동안 강경입장으로 평행선을 달리던 양측에 해결의 실마리가 던져진 것 이다.
이날 반군들이 처음으로 정부안에 공식반응을 보임으로써 그동안페루정부가 보증위원회를 구성한뒤 내놓은 제안이 협상테이블에 올려지게 됐다.이미 페루정부는.반군의 무기반납,제3국망명 안전보장'을 반군측에 제시한바 있다.
그럼에도 걸림돌은 여전히 남아 있다.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반군들은 ▶반군의 합법정당화▶수감중인 동료중 최소한 지도자 폴라이의 석방▶몸값 지불등 세가지를 막판 새 타협안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군의 정당화는 90년 콜롬비아의 게릴라단체 M19가 무장투쟁을 포기하면서 성사된 적이 있다.
동료 석방과 관련해서는 반군들은 외형상 전원석방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실 폴라이만 풀려난다면 수긍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 조건은 반군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대목으로 92년과 지난해 파나마와 멕시코에서 일본 기업인들이 납치됐을때 각각 75만,2백만 달러가 몸값으로 지불된 선례(일본정부는 부인)가 있고 일본정부가 인질사건에 약하다는 점을 반군들이 잘 알고 있다.
.사무라이'라는 별명의 후지모리가 이를 받아들일지 미지수다.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 정권의 이미지가 실추되는데다 평화적 해결을 바라는 일본정부의 압력도 그에게는 적지않은 부담이다.
게릴라들의 망명처로는 쿠바.멕시코.에콰도르등이 떠오르고 있으며 결국 이들지역에 반군들이 망명하는 선에서 해결될 전망이다.
물론 여기에는 후지모리가 반군들의 역제의를 어느 정도 수용하느냐가 관건이다.그러나 사태가 어떤 방향으로 해결되 든 간에 현재로선 반군들은 국제적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하게 되고 후지모리는 적지않은 정치적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커보인다.
〈정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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