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배명복 시시각각

‘빅3’의 덫에 걸린 오바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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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오바마는 첫 인사 조치로 민주당 하원의원인 램 이매뉴얼을 백악관 비서실장에 내정했다. 싸움닭처럼 성격은 불같지만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한다는 평을 듣는 이매뉴얼이다. 미국의 변화를 이끌어 내려면 의회의 협조가 절대적이라는 영리한 계산도 작용했음 직하다.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껄끄러운 인물, 그렇지만 일 잘하는 인물을 최측근에 포진시킨 셈이니 인사의 첫 단추를 잘 끼웠다는 평이다.

정적(政敵)까지 끌어안는 포용의 리더십도 선보이고 있다.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피 터지게 싸웠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에게 국무장관직을 제의했다. 패자가 된 존 매케인 상원의원에게는 국가에 대한 기여를 칭송하며 정중하게 협조를 요청하는 뭉클한 장면을 연출했다. 그는 공화당 인사까지 포함된 초당적 내각을 꾸릴 구상에 몰두하고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보여줬던 통합과 겸손의 미덕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찬사는 여기까지다. 오바마는 모든 찬사를 무색케 할 수 있는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GM·포드·크라이슬러 등 미 자동차 3사, 즉 ‘빅(Big)3’를 국민이 낸 세금으로 살리자는 입장을 택한 것이다. 민주당은 금융위기 수습용으로 책정한 7000억 달러의 공적자금 중 250억 달러를 빼내 부도 위기에 몰린 빅3를 지원하는 법안을 의회에 상정했다.

빅3는 자신들이 망하면 경제에 파국적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며 노사가 한목소리로 의회를 압박하고 있다. 직접 고용 인력 25만 명 등 총 300만 명이 일자리를 잃게 되고, 이로 인한 소득과 세수 감소는 미 경제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란 협박이다. 그러니 금융기관을 살리듯 자기들도 구해달라는 것이다. 빅3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경영진과 노조의 공동 책임이다. 시장에서 팔리지도 않을 차나 만들면서 자기들이 누릴 혜택은 다 누려온 당연한 결과다. 그래 놓고 국민 세금으로 살려내라니 파렴치도 이런 파렴치가 없다.

민주당의 지지 기반인 자동차 노조가 자신의 당선에 기여한 점이 오바마로서는 신경이 쓰일 것이다. 자동차 산업이 갖는 상징성도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더라도 시장경제 원칙에 위배되는 빅3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은 정당화될 수 없다. 미국에서 도산 위기에 처한 것은 자동차 산업만이 아니다. 또 자동차 산업의 위기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이 빅3에 대한 지원을 결정하면 유럽이 바로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보호주의가 본격화하면서 세계경제의 위기는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법에 따라 파산보호를 신청한 뒤 채권은행을 통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통폐합을 단행함으로써 미 자동차 산업의 환골탈태를 도모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난파선의 침몰을 막으려면 선장은 무거운 짐부터 바다에 던져야 한다. ‘제티슨(jettison)’, 곧 투하(投荷)의 원리다. 다 지키려다가는 다 잃을 수 있다. 찬사 뒤에 오는 것은 실망이다. 이제 오바마가 할 일은 누구부터 실망시킬지 정하는 것이다. 우선순위의 맨 앞에 빅3가 와야 한다.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그것이 미국을 살리고, 세계를 구하는 길이다. 덫에 걸린 오바마의 선택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