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전문가기고>韓.美 북한사과 잘 활용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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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북한이 사과했다고 해서 아직 축배를 들기에는 이르다.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외견상 서울측의 승리로 비춰지는 이번 사과가 실제로는 북한의 전략적 소득을 담보로 한 전술적 후퇴일 수 있다. 북한측의 유감성명을 꼼꼼히 읽어보면 난국을 타개하고 잠수함사건 이전으로 복귀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다.북한의 사과는 카길사의 50만 곡물 구상무역이 허용되는등 미국의 대북(對北)무역제재 완화조치와 3자설명회 참가를 묶은 일괄 타결의 한부분이다.명시적인 것은 아니지만 북한의 사과로 형성된 분위기는올 상반기중 대규모의 식량원조로 연결되는 듯하다.게다가 북한은북.미 관계개선과 미국의 대북원조를 끌어내려는 전략으로 오히려북.미간 미사일회담을 요구했다는 얘기도 있다.
물론 북한의 사과뒤에는 엄청난 초조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향후 3개월간 북한에서는 광범위한 기아상태가 계속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북한은 잠수함 침투사건 이후 한국을 달래지 않고서는 어떤 대규모 국제지원도 기대할 수 없었다.작은 대가를 치르면 그 결과는 대규모 식량원조,경수로 프로젝트의 진행과 함께 한국기업의 대북투자도 끌어낼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물론 북한은 체면을 살리느라 서울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회피했고 미국과 직거래했다.또 4자회담 부분도 남북한 직접대화는 부차적 문제로 밀려났다.이는 북한측에 중요한 선례가 될 수 있다.즉 북한의 전략적 목표는 미국이 구명뗏목의 역할 과 함께 남한의 흡수통일에 대비,북한체제를 보장해 주도록 만드는데 있다.
따라서 한.미 양국은 북한의 사과이후 마련된 분위기를 적극적인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우선 양국은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의 균형을 만들어내기 위해 자기반성적인 회의를 열 필요가 있다.이 회의에서는 양국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또 북한이필요로 하는 바를 어느 수준까지 들어줘야 할지에 대한 주도면밀한 연구와 상호이해가 이뤄져야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북한의 개혁을 촉진시키는 한국기업의 대북투자 혹은 북한의 세계은행(IBRD)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가입을 허용하는 조건으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감소시키는 거래가 필요할 것이다.이 단계에서는 북한의 미사일통제 체제(MTCR),화학무기금지협약(CWC)가입과 서울~평양간 핫라인 가동등이 추가될 수 있다.
이런 것들은 바로 북한의 사과를 계기로 형성된 분위기 속에서이뤄져야 될 신뢰구축의 몇가지 사례다.한.미 양국은 이와 함께미래에 대한 명백한 청사진을 북한측에 보여줄 필요도 있다.이같은 접근은 남북한 화해에도 기여할 것이다.특히 이런 청사진 제시는 북한의 외교적 주도노력을 차단하면서 한국이 한반도문제의 주역이 될 수 있는 전략이기도 하다.
로버트 매닝 美 진보정책硏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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