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삼칼럼>머리숙인 大選走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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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최근의 여론조사들은 하나같이 우리 국민들이.경제해결능력'을 차기 대통령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로 꼽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이는 우선은 최근의 어려운 경제사정 때문일 것이다.그러나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닌 것같다.그동안 정 치지도자의 덕목으로 높이 평가해온.도덕성'이나.지도력',그리고.개혁성향'등을 제쳐 놓고.경제해결능력'을 중시하고 있는데는 차기 대통령의 국가경영능력에 관한 다중적인 함축과 요구가 내포돼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쉽게.경제해결능력'이라고 말하지만 이에는 최소한 세 가닥의 능력이 집합돼 있어야 한다.첫째가 경제문제를 제대로 파악할 줄아는 지적 능력이고,둘째가 문제를 장기적 안목에서 하나하나 풀어나갈 수 있는 계획을 마련할 수 있는 능력이며 ,셋째가 문제해결에 앞장 설 관료사회를 장악할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 볼 때 현 정권은 이 세가지 가운데 어느 한가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채 출발했다.그 가장 큰 원인은 DJ와의 선거에서 승리하는데만 전력투구하느라 집권후의 일까지 신경쓸여력이 없었던 데 있다.그것이 결국 오늘의 경제 난국을 초래했다는게 많은 사람들의 지적이다.
지난 일이야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만 심각한 문제는 똑같은 과정이 다시 되풀이될 상황이라는데 있다.여당 핵심부의 이야기로는대선후보들의 입과 발을 가능한 한 오래 묶어 두었다가 선거 3~4개월쯤 전에나 풀어 놓겠다는 것인데 3~4개 월이면 선거준비 하기에도 짧은 기간이다.이렇게 되면 누가 여당후보로 결정되든,선거승리가 급선무지 집권후의 문제가 안중에 들어올리 없다.
그러고나면 선거에 이긴다해도 현 정권이 바로 그랬듯 집권후의 갈팡질팡은 피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요즘같은 세월에 다음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는것도 상식으로는 이해 못할 일이거니와 또 틀어막는다고 뻥긋도 못하고 꿀먹은 벙어리가 되고 마는 그 많은 야심가들의 처신도 불가사의하기는 꼭 마찬가지다.하기는 노동법.안기 부법 기습처리하는데 꼭두새벽부터 불려나와 자동인형처럼 수도 없이 앉았다 섰다 한 사람들이니 입 다물라면 다물고 마는게 더 정상인지도 모르겠다. 독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지는 지난 4일자 기사에서“한국이 민주화를 자랑할 수 있는.호랑이 국가'로 계속남으려 한다면 합의추구라는 민주주의의 기본룰을 지켜야 한다”고노동.안기부법의 기습처리를 꼬집었다.외국 언론들의 비 판뿐만 아니라 성급한 처리는 노동계의 격한 반발을 불러와 새해 들어서도 사회가 온통 뒤숭숭한 판이다.그런데도 그 많은 대선주자들은무얼 하는지 여권에서는 오직 한가지 소리만 들릴 뿐이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노동법 문제야말로 대선 후보들이 자신의 식견과 경륜을 선보일수 있는 주제였다.노동법 처리방식만 해도 같은 당 안에서도 얼마든지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그러나 다른 목소리는커녕 꼭두각시 노릇이나 하고 말았으니 시중에는 용(龍 )이 아니라.
뱀'이라는 비아냥이 나도는 것이다.
연말연시를 맞아 각 언론사가 다투어 마련한 인터뷰에서도 대선후보들의 생각은 별다른 차이를 발견할 수 없이 대동소이했고 그나마 생각의 깊이가 얕았다.말조심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그러나그보다는 우리 사회의 과제나 국가경영에 관해 깊 이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여당 후보들 뿐인가.어쩐 일인지이즈막에는 야당 후보들의 발언에서도 별 차별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러고 보면 경선 과정에서나,그 이후의 대선과정에서 남는것은 어지러운 합종연횡이나 인신공격,그리고 지역패권주의 뿐일 것이다.최근의 여론조사는 대통령선거일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국민의 관심도는 오히려 낮아지고 있는 기현상을 보여주고 있다.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마라톤에서만 스퍼트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정치에서도 스퍼트가필요하다.그렇다고 선거운동을 하라는게 아니라 지금과 같은 국가적 비상시국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밝히고 문제해결을 위해서도 적극 나서는 대선주자다운 처신을 하라는 것 이다.국민들은지금 그 많은 대선주자들이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고있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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