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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본·대만, 진화하는 정치부패 수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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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호 35면

정치와 검찰의 관계는 참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다. 정치권의 부패를 수사하는 것은 검찰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어렵고 험난한 과제다. 자칫 역풍을 맞아 검사가 거꾸로 고초를 겪기 쉽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 검찰의 록히드 사건 수사다.

1976년 7월 27일 새벽 도쿄지검 특수부의 마쓰다 검사와 수사관이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를 자택에서 체포했다. 같은 해 2월 미 상원외교위원회가 록히드사의 뇌물 스캔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일본 정부에 거액의 뇌물을 주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지 5개월여 만의 일이었다. 체포 당시 다나카는 총리직에서 물러나 있었지만, ‘컴퓨터 붙은 불도저’ ‘서민 총리’의 별명을 얻으며 집권 자민당 최대 파벌의 수장으로 정계를 호령해온 최고 실력자였다. 검찰은 8월 16일 록히드사에서 5억 엔을 수뢰한 혐의로 기소했다. 재판 과정에서 다나카는 무죄를 주장했으나 1983년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징역 4년, 추징금 5억 엔의 실형이 선고됐다. 결국 다나카 사후에 최종적으로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서도 자민당의 일당 지배 체제는 그대로 유지됐고, 자민당 내 다나카 파벌은 오히려 증가일로를 걸으며 결속력 또한 강화됐다. 그 결과 일본 검찰의 특별수사는 상당 기간 침체일로를 걸어야 했다.

일본에 록히드 사건이 있다면 한국에는 95년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95년 10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결과 노 전 대통령이 기업체 대표들로부터 이권 청탁과 함께 2800억원대의 돈을 받은 혐의를 확인하고 그를 구속했다. 같은 해 11월 검찰은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했다. 이 특별수사팀 발족은 전두환 전 대통령 구속으로 이어졌다. 군부 출신의 전직 대통령들이 사법 처리됨으로써 군부 독재의 잔재가 완전히 청산되고 민주화가 완성됐다.

필자가 새삼스럽게 한국과 일본의 두 수사를 떠올린 계기는 이달 12일 천수이볜(陳水扁) 전 대만 총통의 구속이다. 수백억원의 비밀 외교 자금 횡령과 해외 자산 도피 등 혐의였다.

천수이볜이 누구인가. 2000년 5월 야당인 민진당 당수로서 국민당 50년 장기 집권을 종식시키고 총통에 당선돼 대만 민주화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당시 천 총통은 선거공약으로 ‘정경유착 척결’을 전면에 내세웠고, 이런 ‘클린’ 이미지가 결정적 도움이 됐다. 하지만 이제는 부패 정치인의 멍에를 쓰고 영어(囹圄)의 몸이 됐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천수이볜 일가의 부패범죄가 처벌을 받게 된 것은 대만 최고법원검찰서(우리의 대검찰청) 특별수사팀의 끈질긴 장기 수사 때문이었다. 대만 검찰은 천수이볜이 총통으로 재임하던 2006년 6월 수사를 시작해 그해 11월 천 총통의 부인 우수전(吳淑珍)을 부패범죄로 기소했다. 그러다 올 5월 치러진 총통 선거에서 국민당 소속 마잉주(馬英九) 현 총통이 당선되자마자 수사가 재개돼 결국 천 전 총통 구속에까지 이른 것이다.

한국·일본·대만 3국의 수사 과정을 보면 전직 국가원수의 부패 사건을 수사했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미묘하게 다른 측면이 없지 않다. 일본의 록히드 수사가 검찰의 침체를 불렀다면 한국의 두 전직 대통령 수사는 긍정적 통과의례의 역할을 했다. 대만의 경우 천 총통 재직 시 시작된 검찰 수사가 구속으로 연결됐다.

우리 검찰은 일본 검찰로부터 권력형 비리 수사의 노하우와 그에 필수적인 용기를 힘써 배워왔다. 이제는 그것을 더 발전시켜 특별수사에 관한 한 세계 어느 검찰 못지않은 실력을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효율적 부패범죄 수사 시스템을 중국과 대만 검찰에 직·간접적으로 전수해주기도 했다.

지금 천수이볜 전 총통 수사를 하고 있는 대만의 최고법원검찰서 특별수사팀은 한국의 대검 중수부 구조를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한다. 세계 여러 나라의 검찰이 경험과 지혜를 서로 주고받으며 용기 있게 임무를 수행해 나간다면 나라와 국민에게 더 큰 봉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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