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주목받는인물>4.토니 블레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커다란 이변이 없는 한 오는 5월이면 영국에는 새로운 시대가개막된다.
5월에 실시될 총선을 통해 21세기 영국을 이끌어갈 신세대 정치인 토니 블레어(43)의 노동당 시대가 개막될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영국인들이 블레어에게 매료되는 것은 그가 지금까지 보수층에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던 노동당을 일대 혁신시켰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지도이념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전통의 명문가문에서 성장한 후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블레어는 노동당 당수 로서는 걸맞지 않게 귀족적 풍모를 풍기는 영국정계의.기린아'다.
외모도 준수하고 무엇보다 사고가 경직돼 있지 않아 유권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이러한 블레어의 인기에 힘입어 노동당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계속 15~25%의 격차로 보수당을 리드해 왔으며 그 추세가 근1년간 변하지 않았다.그러다 보니 세금문제에서 교육정책에 이르기까지 블레어가 제시하는 각종 공약은 현 정부의 정책발표보다 더 비중있게 언론의 주목을 끌고 있다.영국의 운명이 그의 머리에 달려있음을 누구나 공감하는 까닭이다.
블레어가 집권하면 영국은 18년 보수당 시대의 종언과 함께 크게 변모할 것이다.
.복지국가'의 망령을 몰아내고 철저한 시장경제원칙에 입각,경제중흥의 터를 닦았던 .대처리즘'이 역사의 전면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영국 언론들은 블레어가 당선될 경우.대영제국'의 환상에서 벗어난 최초의.전후세대 총리'가 탄생하게 된다고 크게 의미부여하고 있다.
국민총생산이 이탈리아에도 뒤질 정도로 쇠약해버린 경제력에도 불구하고 강대국으로 행세해온 영국 대외정책의 모순을 블레어가 타파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블레어의 등장 이후 영국은 자국 위상에 맞는 보다 실리적이고 고립적인 외교를 펼 것으로 보인다.또 국내적으로도 고답적인 사회주의 이념에서 탈피,유연한 정책을 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가 신노동당 강령에서 밝히고 있듯 그의 집권 이후 노동당 정권은 70년대 노동당 정권과는 완전히 다른 보수적인 정책을 취할 것이다.급진적인 사회주의 정책을 취할 가능성은 전무하다는게 노동당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독일.프랑스등 유럽 인접국들도 그의 거취에 누구보다 비상한 관심을 쏟고 있다.
유럽통합의 성패가 블레어의 당락에 좌우되는 까닭이다.
영국과 유럽연합(EU)의 협력에 사사건건 반대를 표시해온 보수당내 과격파들과 달리 노동당은 유럽통합에 적극적일 뿐 아니라영국의 미래를 여기에 걸고 있기 때문이다.
[런던=남정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