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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 없는 총기 빼앗긴 사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3일 육군 전승부대에서 일어난 총기를 빼앗긴 사건은 우리 군의.적당주의'관행과 기강해이가 빚어낸 어처구니 없는 사건으로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특히 지난해 강릉 무장공비사건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허점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우 리 군이 안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만약 북한측의 소행이라면 어떻게 됐을지 아찔할 뿐이다.40대범인이 소초로 들어선 것은 3일 오후11시20분쯤.민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소초 뒷문을 통해 들어온 그는 대뜸 내무반으로 향했다.소초 근무인원은 40명.범인은 내무반 을 둘러보며“수고 많다.수도군단에 전입온 백 소령”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전입온지 얼마 안돼 해안순찰을 해야겠다”고 했다.하사관과 사병들은 상급부대 소령 차림새인데다 언행까지도 의젓해 모두 일어나 거수경례까지 붙였다.범인은 이어 소초본부에서 남정훈(南廷勳.22)소위로부터 책임구역 지형과 소초현황에 관한 브리핑을 30여분동안 받았다.범인은 브리핑 도중“살구지초소가 우측에 있느냐”“용두리 포구는 어디 있는가”“도(都)상사는 잘 있느냐”며너스레를 떨었다.
南소위는 그가 완벽한 연기에다 부대사정을 꿰고 있어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범인은 브리핑이 끝나자 총기보관대를 보며“저 총이 K2소총이냐”고 묻곤“내가 소대장 할 때는 저 총이없었다”며 소총을 집어들고 연신 개머리판을 접었 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리곤 본색을 드러냈다.“순찰 좀 하겠다.이 지역에는간첩도 나타나고 취약하다는데 총하고 실탄좀 다오.” 南소위가 소총과 15발들이 탄창 2개를 건네주면서“제가 수행하겠습니다”고 하자“이쪽 사정엔 빠꼼이야.수행할 필요 없다”며 유유히 소초를 빠져나갔다.
소총은 부소초장 이영모중사 소유였다.이때가 오후11시50분쯤.총기와 실탄을 빼앗긴 사건은 이렇게 30분만에 깜쪽같이 벌어졌다. 南소위가 범인에게 속은 사실을 안 것은 다음날 오전1시30분쯤.순찰나온 중대장에게 상황을 보고하자 이를 수상히 여긴중대장이 군단에 확인한 결과 백모 소령은 특전사에 근무하는 현역장교임이 밝혀졌다.
관할 해안초소에 인터폰으로 연락하자“백모 소령은 오지 않았다”는 대답뿐이었다.
일순 南소위와 중대장의 얼굴이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상황은 이때부터 숨가쁘게 돌아갔다.연대본부에서 수도군단까지의군계통과 화성경찰서 서신파출소→화성경찰서→경기경찰청의 경찰계통으로 상황이 전파됐다.
비상경계태세인.진돗개 하나'가 발령된 것은 오전3시10분.군.경의 차단선이 겹겹이 쳐진 것은 범인이 도주한지 3시간20분만이었다.그나마 늑장출동 속에 범인은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신원을 확인하고 총기를 건네준다'는 총기관리 철칙은커녕 기본수칙도 지켜지지 않았다.군의 기강과 사후 대처능력등 구멍뚫린우리 군의 현주소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셈이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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