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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지배력 표준이 좌우한다-기술보다 중요 흐름도 잘타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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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미래의 표준을 장악하라-.” 지구촌을 한마당으로 삼아 비즈니스 전쟁을 펼치고 있는 오늘날 세계 각국 첨단업종 기업들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지상명제다.
주요 제품의 규격이 국제표준화기구(ISO)와 같은 국제공인기관이나 업계의 공식합의에 의해 이뤄지기보다는 치열한 기업간 경쟁을 통한 적자(適者)생존에 의해 자연스레 형성되는 시대가 됨에 따라 특히 첨단기술업종 안에서.표준전쟁'이 가 열되고 있기때문이다.제품규격의.공식적 표준(De Jure Standard)'보다 이른바.사실상 표준(De Facto Standard)'이 더욱 중시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표준전쟁에서는 단순히특정기술이 앞섰다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상당수 전문가들은.
윈도'가 당대 최상의 컴퓨터운영체제(OS)가 아니었지만 IBM이 이를 채택함으로써.표준'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고 평한다.
.사실상 표준'에 관한 지난 1년간의 연구작업을 조만간 단행본으로 펴낼 예정인 LG경제연구원 박팔현(朴八鉉)책임연구원은“표준을 획득하는 데는 기술적 우위 이외에도 기술개발 초기에 전후방 연관업종이 그 기술에 얼마나 쉽게 적응할 수 있느냐,나아가 최종 수요자들이 얼마나 빨리 친숙해지느냐등이 몹시 중요하다”고 말했다.첨단기술에다,제품개발 초기에 시장지배력을 순식간에확산시킬 수 있는 요건들이 아울러 맞아떨어져야한다는 이야기다.
일찍이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회장도“표준이 최첨단 제품일 필요는 없다.무엇보다 많이 팔리는게 중요하다”는 지극히 평범한 명언을 남긴바 있다.
.유사 이래 최고의 표준'이라는.윈텔'(인텔 칩과 윈도의 결합)컴퓨터를 비롯해 오늘날 컴퓨터.정보통신 분야에서 넷스케이프의 웹 브라우저나 휴렛팩커드의 HP 레이저젯 프린터등이 제왕의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도 모두 빼어난 기술력과,업 계내 제휴를통한 개발초기의 호환성.범용성 증대 노력이 맞아떨어진 결과라는것이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줄곧 운위돼온.사실상 표준'개념이 최근 들어 이처럼 부쩍 각광받는 것은 기술개발과 마케팅의환경이 정신차릴 수 없을 만큼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텔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정보처리 속도는 1년반만에 배가(倍加)되고 있다.LP레코드가 1950년 도입된 이후 보급률 10%를 넘는데 13년이 걸린 반면,LP를 대체한 콤팩트디스크(CD)는 출시 후 5년만에 같은 보급률을 달성했다.C D를 대신해.꿈의 차세대 기록매체'로 불리는 디지털 비디오 디스크(DVD)는 10% 보급률을 달성하는데 2년정도밖에 걸리지 않으리라는 전망이다.
일본 와세다대 야마다 에이오(山田英夫)교수는.경쟁우위의 규격전략'(다이아몬드사 발간)이란 저서에서 표준전쟁의 새 조류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첨단기업간 기술격차가 크게 좁혀져 비슷한 기술수준의 첨단제품이 동시다발적으로 개발되는 일이 잦아졌다.게다가 제품단위당 투자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재빨리 과실을 챙겨야 하는 기업 입장에선 느림보인.공식적 표준'을 기다리지 못하고.사실상 표준'쟁취를 위한 싸움터에 내몰리고 있다.”따라서 오늘날 표준전쟁의 양상은 70년대 소니와 도시바간에 VCR를 놓고 벌어진 그 유명한.베타'대.VHS'대결의 고전적 사례와 사뭇 차별된다.이제는 몇몇 특출한 대기업의 힘겨루기 수준을 크게 벗어나 있다.다시 말해 정보통신.컴퓨 터.반도체등 여러 첨단분야가 서로 뒤엉키고 제품이 복합화.멀티미디어화하는 추세에서 이(異)업종간의 합종연횡(合縱連衡)과 이합집산은 어느덧 기업의 생존술이 돼버린 것이다.이 싸움에서 패배한 진영은 시장점유율이 5% 이하로 떨어지는 참 담한 패배를 맛보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이 이 점을 입증한다.
.사실상 표준'문제는 특히▶가전▶컴퓨터▶통신등의 분야에서 더욱 치열하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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