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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계 전문가 5人이 권하는 신년초 권장도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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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내일이면 정축년(丁丑年)첫날. 연말의 들뜬 감정을 가라앉히고 차분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할 때다. 느릿느릿 하지만 믿음직스런 황소 발걸음처럼 한해를 시작하는데는 무엇보다 독서가 제격이다. 16세기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의 말처럼 독서만큼 값싸고 영속적인 쾌락은 없기 때문이다. 새해를 알차게 준비하는 뜻에서 인문·과학·대중문화등 각계 전문가 다섯명으로부터 ‘새해엔 이런 책으로 시작하자’는 취지의 권장도서들을 받았다.

우리 학문의 대외 종속성을 비판하며 기성학계에 과감한 도전장을 띄웠던 젊은 철학자 김영민(한일신학대)교수는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첫번째로 꼽았다. “현대사회의 여러 문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새로운 인간상·사회상을 제시한 현대의 고전”이라는 평가다.

김교수는‘소설 소현세자’(박안식·창작과비평사刊)에선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를 찾는다. 16세기말 급박했던 동북아 정세 속에서 자율적 근대화를 도모했던 소현세자의 비극적 운명과 현재 우리 상황과의 유사성을 주목했다. 한 김교수는 서양철학의 전통을 통째 흔든 프리드리히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중세에서 근세에 이르는 서양지성사를 재치있는 문체로 일람한 버트런드 러셀의 ‘종교와 과학’을 들었다.

문화평론가 김성기씨는 후기 자본주의 문화의 리더격으로 부상한 대중문화를 훑었다. 먼저 그는 전북대 강준만교수의 ‘고독한 대중’(개마고원刊)을 추천했다. 현대 소비사회에 매몰된 대중의 고독한 실체를 성찰하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이어 대중문화의 주요 이론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대중문화의 패러다임’(원용진·한나래刊)과 90년대 한국문화를 대변하는 재즈의 계보와 현황을 해설한 ‘재즈 재즈’(장병욱·황금가지刊)를 입문서로 권했다.

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린 헌트교수가 엮은 ‘포르노그라피의 발명’(책세상刊)도 뽑았다 “성과 그 표현에 대한 합의된 공론이 없는 우리의 서투른 성담론을 되짚어보는 반사경 구실을 한다”는 설명이다. 소설가 복거일의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죽음 앞에서’(문학과지성사刊)는 “우리 일상의 내밀한 구석구석을 마치 스냅사진처럼 포착했다”고 지적했다.

현대는 과학의 시대. 인터넷·정보사회등 오늘날의 화두(話頭)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과학에 대한 일반인의 소양이 요구되는 것도 이런 까닭. 과학세대 김동광대표는 별다른 부담없이 한겨울에 마음껏 빠질 수 있는 대중서를 골랐다.

예컨대 올해 큰 관심을 끌었던 외계 생물체 문제를 폭넓게 다룬 호주 물리학자 폴 데이비스의 ‘우리뿐인가’(김영사刊), 인류 최초의 화석으로 추정되는 두개골을 축으로 인간의 기원을 추적한 ‘최초의 인간 루시’(도널드 요한슨外·푸른숲刊), 환경파괴등 인간의 무분별한 행동과 오만을 경고한 ‘제6의 멸종’(리처드 리키外·세종서적刊)등. 노벨화학상 수상자 로얼드 호프먼의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까치刊)와 과학저널리스트 스티븐 레비의 ‘해커, 그 광기와 비밀의 기록’(사민서각刊)은 각각 “일반인에게 홀대받는 화학의 참모습을 알기 쉽게 제시했다” “컴퓨터 발전에 기여한 해커의 중요한 역할을 복원했다”는 점에서 선정됐다.

새해에는 불경기·감량경영에 움츠러들었던 가슴을 쭉 펴고 자연과 호흡하며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러보자. 중국-파키스탄-네팔로 돌아오는 히말라야 순례기를 최근 ‘방랑보다 황홀한 인생은 없다’(초당刊)는 제목으로 펴낸 전문산악인 박인식씨는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 탐험가 우에무라 나오미의 ‘내 청춘 산에 걸고’(평화출판사刊)를 선뜻 권했다. “84년 알래스카 매킨리봉 겨울철 등반을 처음으로 시도하다 실종되기까지 모험심과 개척정신이 가득한 탐험가의 전범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다.

어린 소녀가 70일동안 태백산맥을 홀로 종주하며 자신에 대한 싸움과 인간에 대한 그리움을 적은 ‘하얀 능선에 서면’(남난희·수문출판사刊)과 대자연을 배경으로 두 친구의 삶과 죽음, 그리고 화해를 담은 영국 등반가 존 심슨의 ‘친구의 자일을 끊어라’(산악문화사刊)도 감동적이라고. 박씨는 이태의 ‘남부군’(두레刊)은 “단순한 지형적 공간이 아닌 민족사적 관점에서 산을 바라본 특수한 경우”라고 덧붙였다.

서양화가 황주리씨는 우리의 내면을 조용히 응시하는 소설들을 집중적으로 들었다. “시끄러운 세상에서 바깥만 쳐다보고 정신없이 뛰어가는 현대인들에게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은 남의 잣대가 아닌 자신에 맞는 스타일의 창조”라고 강조한 그는 이런 뜻에서 ‘호프만의 허기’(레온 드 빈터·디자인하우스刊) ‘좀머씨 이야기’(파트리크 쥐스킨트·열린책들刊) ‘일각수의 꿈’(무라카미 하루키·문학사상사)을 한번 읽어보도록 권고했다. 한편 겨울방학에 들어간 아이들이 읽을 책으로는 어린이도서연구회가 선정한 권장도서(표 참조)를 참고하면 유용하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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