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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서 아시아 목소리 높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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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국제금융위기 해결을 위해 주요국 정상들이 만나는 G20 회의가 15일 열린다. 이번 회의에서 정상들은 신(新)브레턴우즈 체제를 논의하느라 시간을 낭비해선 안 된다. 국제금융위기는 기본적으로 현재의 국제금융시스템에 문제가 있어 일어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아시아 국가와 미국은 보다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핵심적인 논점을 들자면 금융위기에 대한 국가 간 공조, 각국이 수출을 증진하고 수입을 억제함으로써 자유무역을 위축시키는 ‘인근국 궁핍화(BEGGAR-THY-NEIGHBOR) 정책’을 펴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방안, 국가별 금융감독 방식을 국제적으로 조화시키는 방안, 스와프(SWAP·통화교환)와 같은 미 연방준비이사회의 역할 확대 방안 등이다.

첫째, 국제금융위기대응관(가칭 GFCS:Global Financial Crisis Secretariat)과 같은 특별기구를 유엔 산하에 만들자고 제안해야 한다. GFCS는 국제적인 거시경제정책을 수행하는 임무를 맡아야 한다. 각국의 정책이 상충하거나 무역 균형이 왜곡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둘째, 아시아 국가와 미국 입장에서 보자면 금융위기의 전염을 막기 위한 아시아금융기구(가칭 AFF:Asia Financial Facility)의 창설이 시급하다. 이는 통화교환을 원활하게 도와주는 국제조직이다. 이제 아시아 국가들이 자체적으로 투기자본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자본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다.

AFF가 필요한 것은 IMF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IMF를 아무리 확대하고 강화한다고 하더라도 세계 각국의 다양한 경제위기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IMF의 또 다른 한계는 그 정책이 대부분 소수 집행간부들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들 간부는 대개 자기 나라 재무장관으로부터 지시를 받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기존의 국제기구 운영자들이 새로운 신흥 경제강국의 변화상을 충분히 알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새로워질 IMF가 신흥 경제강국들을 실망시킬 것이라고 예단할 수는 없지만, IMF 개혁까지 예상되는 오랜 시간은 분명 신흥 경제강국들을 답답하게 만들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자신들의 금융시장을 방어할 스와프 네트워크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AFF를 통해 통화교환을 원활히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G20은 GFCS 창립을 지지해야 한다. 왜냐면 IMF는 이미 아시아 국가들의 신뢰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영국·프랑스가 제안하는 신 브레턴우즈 체제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노력에 불과하다. 서유럽 국가들은 유엔이나 IMF 등 기존 국제기구에서 실제 자신의 위상보다 훨씬 많은 지분을 차지해 왔다. 이젠 아시아 신흥 경제강국들의 몫이 늘어야 한다.

유엔은 국제적으로 가장 신뢰받는 기구다. 따라서 GFCS가 만들어진다면 우선 유엔 산하에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유엔 산하에 둘 경우 특정 국가의 이해를 떠나 국제적인 다자간 협력의 의지를 보여줄 수 있다.

미국도 AFF 창립을 지지해야 한다. 미국은 아시아 국가와의 관계에서 지금까지처럼 하드 파워에 너무 의존해선 안 된다. 아시아 국가들이 스스로를 위해 필요한 일을 하도록 돕는 소프트 파워를 더 발휘해야 한다. 이는 미국이 아시아와 새롭게 관계를 정립하는 훌륭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AFF는 시간이 지나면서 APEC과 같은 수준의 기구로 발전할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은 우선 급한 세계적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협력방안을 집중 논의해야 한다. GFSC는 국제금융질서의 규제와 감독에 조화를 이루기 위한 새로운 시도다. AFF에 대한 미국의 지지는 다양한 국제협력관계의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일이다. 만약 G20 정상들이 이런 과제들에 대해 분명한 결단을 내려준다면 세계는 이전보다 훨씬 믿을 만해질 것이다.

윙타이우 미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국제금융
정리=오병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