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진흥기금 포장 바꿔 원천징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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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포장만 바꿔 계속 돈을 걷어도 되는건가.”무역진흥기금(옛이름 무역진흥특별회계.무역특계자금)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공식적으로는 이 제도가 올해말로 도입 28년만에 없어진다.그러나 사실은 그게 아니다.무역협회가 “아시아.유럽 정상회 의(ASEM) 컨벤션센터 건립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2년정도더 걷겠다”고 나선 것.물론 쓰는 곳은 다르다.지금까지는 무역자동화나 수출촉진 활동등에 지원됐다.앞으로는 ASEM 컨벤션센터를 짓는데만 사용하겠다는 것이다.그러나 막 상 연간 1천억원이상(96년의 경우)을 부담해야 하는 수입업자의 입장에서 결과는 마찬가지다.포장만 다르지 내용은 같다고 반발하고 있다.때문에 앞으로 이를 놓고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는 내년 1월부터 무역진흥기금을 더 이상 걷지 않기로 했다.대외무역법 개정으로 내년부터 수입승인(I/L) 제도가 없어지면 지금같은 방법으로 걷을 수도 없어 차제에 시한을 1년 앞당겨 폐지키로 했다.
현재는 수입업자가 영수증을 첨부해야 은행에서 수입승인을 받을수 있다.사실상.원천징수'인 셈이다.
이렇게 되자 무협이 대신 ASEM 컨벤션센터 건립에 필요한 돈을 .모금 형식'으로,.한시적'으로 징수하겠다고 나섰다.
무협에 따르면 2000년 ASEM 회의를 위해서는 컨벤션센터에만도 약 3천억원이 들어간다.
이중 1천5백억원은 인터컨티넨탈호텔 지분,그리고 부산.창원.
홍콩등 국내외 부동산을 팔아 조달할 수 있지만 나머지는 방법이없다는 것.
무역진흥기금이 조기 폐지됨에 따라 수입(96년 약 3백억원)이 줄어 타격이 더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지원해 줄 것도 아니므로 모금 형식으로 업계로부터 돈을 걷겠다는 것이다.현재 비율(0.14%)로 2년정도면 부족한 1천5백억원을 충분히 메울 수 있다는 계산이다.
정부와도 내부적으로는 이미 충분한 합의가 이뤄졌고 절차도 상당히 진행됐다.
통상산업부는“불가피하지 않느냐”는 반응이고 재정경제원도 예산에서 도와줄 형편이 아니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입장이다.한관계자는“ASEM이란 국가적 사업을 위한 컨벤션센터를 짓기 위한 재원마련은 불가피하다고 본다”고 말했다.무협 회원사간.결의'절차도 밟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무역진흥기금은 다시.ASEM 컨벤션센터 건립기금'으로 재포장돼 한동안 계속 징수될게 확실시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무역대리점협회 관계자는“정부가 ASEM을 명분으로 이런 준조세를 계속 징수하겠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반발하고 있다.꼭필요하면 재정에서 지원하라는 주장이다.
정부 정책의 일관성.형평성 문제에서도 시비가 예상된다.정부는ASEM은 민자유치 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었다.
제 돈으로 건물을 짓겠다는 민간기업도 있는데 굳이 무협에 사업을 맡기면서.편법'을 묵인하려 한다는 것이다.
.과연 한시적이 될까'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도 있다.
지난 80년대초 기금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을 때 공교롭게도 현 삼성동 무역센터를 짓기 위해서는 존속이 불가피하다는 명분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법적 근거도 시빗거리다.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회원사.자율 결의'형식이다.과거에야 서슬이 시퍼래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세상이 달라진 지금 수입업체들이.못 내겠다'고 나설 경우 어떻게 될까.
이런 점을 감안할 때 기금 징수방침은 국회등에서 다시 한바탕논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편 무역진흥기금이 내년부터 없어지는데 따른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엉뚱한데 들어가서 그렇지 이 돈의 긍정적인 역할도 적지 않았다.
중소기업 해외전시회 참가비 보조,무역자동화(EDI)사업 등….당장 KOTRA나 상사중재원의 운영에도 적잖은 타격이 예상된다.때문에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영선(李榮善)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원칙적으로 기금은 없어져야 한다”고 전제,“그러나 중소기업 해외시장 개척이나무역인프라 구축등에 대해 계속 지원할 수 있는 대안이 마련돼야한다”고 말했다.

<김왕기.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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