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진 기자의 오토포커스] 현금 부자 도요타 80조원 쌓아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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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요즘 자동차업계의 화두는 ‘살아남기’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판매 감소가 여간 심각한 게 아닙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최악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선 120년 자동차 역사에서 처음 겪는 일이라는 소리도 나옵니다. 상당수 회사가 차를 팔아 이익을 내는 기본적인 기업활동보다는 빚을 내든, 자산을 팔든 당장 부족한 현금을 조달하는 데 혈안입니다. ‘이 시기를 어떻게든 넘기고 보자’는 식이죠.

그렇다면 세계 자동차업계에서 현금이 가장 많은 회사는 어디일까요. 단연 도요타가 꼽힙니다. 도요타의 현금 보유액은 최소 6조 엔(약 80조원)으로 추산됩니다. 물론 3개월 이내 현금화할 수 있는 금융자산이죠. 다음으로 BMW·혼다·포르셰가 약 10조∼15조원의 현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도요타는 2001년 이후 매년 10조원 이상 순이익을 내왔습니다. 연구개발비 투자 외에는 배당금도 인색하게 주면서 현금을 쌓아놓았습니다. 현대차는 약 3조∼4조원 정도 현금을 보유한 것으로 자동차 애널리스트들은 보고 있습니다. 기아차는 현금이 별로 없어 매달 살림살이가 넉넉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죠.

어마어마한 현금 보유로 도요타는 ‘일본에서 가장 큰 은행’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이는 도요타의 창업정신 덕분이기도 합니다. 창업자 도요다 기이치로(豊田喜一郞)는 초창기인 1930년대 ‘빚의 무서움을 알아야 한다. 현금을 쌓아놓고 설비투자에 써야 한다’며 재무강령을 만들었지요.

도요타 회장을 역임한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상담역은 90년대 초 2년간 재무담당 전무로 일했습니다. 당시 그는 “재무담당이 할 일은 곳간을 지키는 것이다. 설비나 연구개발 투자금을 꺼내 해당 부서에 나눠주면 그만이다. 부동산이나 주식투자는 절대 금물”이라고 말했죠. 그래서 그런지 현재 도요타그룹 경영진 가운데 재무통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역대 도요타 사장도 구매·판매·마케팅 출신이지 재무 전문가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현대차 그룹 사장단에 재무 출신이 즐비한 것과 대비된다고 할까요. 현대차는 재경본부에서 해외 수출차의 가격을 결정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도요타의 경우 환차익을 노린 환투자를 하거나 주식펀드에 들거나 하면 재무담당자의 목이 날아갑니다. 현금 80조원을 미국 국채나 정기예금 등 안정적인 자산에 투자한다고 합니다. 영업외수익으로 잡히는 연간 이자가 1조5000억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연이율 2%도 안 되는 투자를 하는 셈이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주식이나 환투기를 해 이익을 많이 내면 경영자가 해이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좋은 차를 개발해 많이 팔아 이익을 내는 제조업 본연의 활동’을 등한시할 수 있다는 거죠. 지극히 상식적이고 촌스러운 경영스타일일 수 있지만 요즘 같은 때 이런 회사가 부러워지는 게 현실입니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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