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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1대1과 3대3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얼핏 보아 닮은 것 같지만 꼼꼼이 뜯어보면 볼수록 차이가 나는 것이 한국과 일본의 시스템운영방식이다.최근 일본 열도에 불고 있는 개혁바람은 김영삼(金泳三)정부초기 이상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정계.관계.경제계 할 것 없이 여기 서 개혁하지않으면 일본의 장래가 없을 것 같은 위기감을 조성하고 매스컴들도 대서특필로 맞장구쳐 여론을 몰아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사정을 늘 염두에 두고 있는 나로선 일본인들의걱정이 선뜻 이해되지 않을 때가 가끔 있다.걱정의 본질과 방향이 다르기 때문일까.예를 들어 한국식 잣대로 보면 일본은 큰 걱정거리가 없는 나라다.연2년 실질경제성장률이 2%대를 웃돌았고,무역흑자기조는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있으며,물가는 4년연속 0%대다.경제의 목을 죄던 초엔고도 기대이상으로 완화됐고,민간금융자산 1천2백조엔(저축률 30%)은 세계최고며,실업률 3.
1%는 선진국중 최우량이다.우리가 보기엔 부자가 엄살을 떨어도너무 떤다는 감이 있다.
그러나 일본의 조야가 보이고 있는 불안감은 결코 엄살의 수준이 아닌 것 같다.불과 3개월전 연립정권아래서만 해도 이해집단의 정치논리로 공전되던 주요 정책과제들이 .위기'여론의 순풍을타고 일거에 매듭지어지고 있는 현상을 봐서도 알 수 있다.예컨대 노조에 발목이 잡혀 옴짝달싹 못하던 일본전신전화(NTT)는세개로 분할해 국제경쟁력을 높이기로 했고,부실채권에 짓눌려 손을 못쓰던 금융개혁은 빅뱅식으로 추진키로 결론냈으며,관료불신의씨앗이 된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 .감독기능은 아예 대장성으로부터 떼내 독립시키기로 했다.
한국과 비교해 의사결정이 늦기로 소문난 일본을 이처럼 기민하게 움직이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아마 미래예측에 대한 국민적 컨센서스가 가장 큰 에너지가 아닌가 싶다.일본인들의 불안은 인구 4명당 1명이 65세이상이 되는 21세 기의 고령화사회를 어떻게 맞을까에서부터 출발한다.
일본정부는 지난달 일본이 현재대로 간다면 2025년엔 경제성장률 0.8%에 국민월급의 60%가 세금.의료.복지비용으로 나갈 것이라고 정밀한 근거를 대 발표했다.또 통산성은 지금 경제구조개혁에 실패하면 2010년의 실업률은 10%가 넘을 것이라고 경고했다.한마디로 늘 코앞의 일에 쫓겨“설마 어떻게 되겠지”라며 한국 사람들이 쉽게 방치하는.미래'를 일본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걱정하고 대비하는 것이다.
일본의 개혁열풍에서 느끼는 또하나 두드러진 특징은 개혁의 목표와 과정이 비교적 뚜렷하고 공정하며 국민의 판단기준과 안목이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이다.예를 들어 행정개혁의 경우 민간인들이대거 입안(立案)단계부터 참여해.98년 성안 2000년 실시'를 목표로 작업중이다.정치적 단기 목표를 겨냥,소수가 밀실에서소급입법도 서슴지 않는 한국의 개혁과는 호흡이 다르다.토론과정이 낱낱이 공개돼 시간이 걸리더라도 투명성높은 국민의 합의를 도출하는데 비중을 둔다.그런만큼 일단 정해진 법이나 결정은 거의 실시가 보장된다.
일본 국민들은 독창적이거나 다양하지 못하다는 비판은 받지만.
신주쿠(新宿)역의 거지도 문예춘추(文藝春秋)를 읽고 있다'는 말이 나올만큼 전반적으로 지식수준이 높다.때문에 이들은 정치인들의 선동에 쉽게 넘어가지 않고 대체로 보수적 성 향이 강하다.지금 일부 고급관료의 부패에다 행정 독주에 대한 반발로 최대위기에 몰려있지만 아직도 일본의 관료는 무식한(?)정치를 리드해가고 있다.특히 검찰.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흔들림이 없다. 서슬퍼렇던 2,3년전의 개혁이 무더기로 좌초하고 있는 현상,지도자의 단견을 뒷감당하는데 너무 몰입했다가 국민적 신뢰를잃고 있는 한국의 관료.검찰-.이런 사정을 잘 아는 한 평론가는“매사에 1대1로는 한국 사람이 일본을 이길지 모 르지만 3대3으로는 어려울 것”이라며 두나라 개혁의 본질을 비교했다.
(일본총국장) 全 堉 전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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