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한국만은 안된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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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대우전자의 톰슨사 인수를.중단'한다는 프랑스 정부의 발표는 충격적이었다.세계 유수 언론들은 대우의 톰슨 인수 좌절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으나 대우는 아직 물건너간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우전자 배순훈(裵洵勳)회장은 지금도 프랑스 현지에서 프랑스 정부와 언론을 상대로 열심히 설득작업을 벌이고 있다.우리 정부와 재계도.부당한'조치를 시정하도록 촉구하고 나섰다.
한승수(韓昇洙)경제부총리가 도미니크 페로 주한 프랑스대사를 불러 항의의 뜻을 전달한데 이어 11일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프랑스에.충격과 유감'의 뜻을 담은 서신을 전달했다.전경련은 이 서신에서 프랑스 정부의 번복이.경제적 측면보다 비경제적이며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결정됐다고 지적했다.12일에는 국회 통상산업위원회에서도 프랑스 정부를 강력히 비난하고 시정을 촉구했다. 우리 정부나 전경련이 특정 기업의 문제를 공론화시킨 것은 참 드문 일이다.사안의 중요성에 비춰.대우-톰슨'문제를 더이상 특정 기업 차원의 문제로 볼 수만 없다는 것이다.물론 그동안 프랑스내의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일어날 때 우리 정부나 재계가 이를 과소평가하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할 부분도 있다.특히프랑스 정부의 결정 번복이 순수한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에 대한 우리의 국민적 논의 확산은 큰 의미를 갖는다.세계 유수의 언론들도.투자자에 대한 차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이나.우스꽝스런 일'로.통제 경제정책의 사고방식'(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라며 프랑스 정부의 결정 번복이.비경제적 요인'에따른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스스로의 결정을 뒤집으며 프랑스 정부가 표면상 내세운 이유는 세가지다.프랑스의 첨단기술이 3국으로 유출될 우려가 있고 대우의 투자및 고용확대 제안에 법적 구속력이 없으며 라가르데르와 대우 사이의 계약이행도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우는 이에 대해.도대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한다.이런 점들이 정말 문제가 됐다면 프랑스 정부는 애당초 대우에 입찰자격을 주지도 말고,더구나 톰슨 인수업체로 선정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혹시.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에만은 넘겨줄 수 없다는 것이 프랑스 정부의 진짜 이유라면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있다.이는 분명한 인종주의 또는 문화적 우월주의에 바탕을 둔 차별이며,양국 협력관계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한국과 프랑스의 경제협력은 결코 적은 수준이 아니다.한국의 원자력발전소와 고속철도는 프랑스의 기술로 시공중이며 한국에 진출한 프랑스 기업 수도 적지 않다는 점을 프랑스 정부는 유념해야 한다.프랑스 정부는 김우중(金宇中)대우그룹 회 장과 배순훈회장에게 프랑스의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최고 명예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도 수여한바 있다.
우리 기업들이 해외투자를 크게 늘려가는 단계에서 돌출한.대우-톰슨'문제는 자칫 한국기업들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다.이번 사건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세계 각국에 나쁜 선례를 남길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프랑스 정부의 차별적 조치는 세계 각국마다 국경없는 경제를 표방하고 있는 시대적 흐름에 분명히 역행하는 것이다.프랑스 입장에서도 이번 사태가 대우나 한국과의 문제에 국한되는게 아니라 프랑스의 외국기업 투자유치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지금은 병인양요 시대가 아닌 것이다.
박병석 경제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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