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갈아 엎지 않고 볍씨 뿌려 ‘친환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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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속농업연구회' 이재욱 회장이 지난달 25일 경남 고성군 거류면 들녁에서 지장농법에 대해 설명하고있다. [김상진 기자]

4일 폐막한 제10차 람사르 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논을 습지로 등록하는 결의안이 진통끝에 통과됐다. 논이 온실가스 배출원이어서 기후 온난화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반대의견 때문이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아시아에서 논은 식량보급기지뿐 아니라 철새와 수중생물을 부양하는 생명창고다. 생태계 보전에 미치는 영향은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다. 이에 반해 유럽국가들이 논에서 거름으로 쓰이는 가축의 분뇨가 박테리아와 만나 분해되면서 막대한 메탄가스를 발생시킨다는 점을 강력하게 제기했다.

지난 4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유엔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에서도 “벼농사가 주요 온실가스인 메탄 배출의 주된 요인이 되고 있어 배출 통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었다.

하지만 메탄가스 배출이 없는 친환경적인 농법이 경남에서 활발히 보급되고 있다.

휴대폰 업체인 ‘노키아 티엠시’ 이재욱(67)전 회장의 지장농법과 경남 하동의 농부 이영문(55)씨의 ‘태평농법’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경상대 최진룡(농학과)교수와 한국지속농업연구회를 조직해 이 농법의 보급에 힘써고 있다. 농사비도 기존 농사비의 10∼20%밖에 들지 않는다. 경남 등 전국의 500여 농가가 이 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이 농법들이 람사르 총회에서 논습지 등록을 계기로 새로이 조명받고 있다.

◆태평농법=모를 심지 않고 논을 갈아 엎지 않는다. 농약·비료·제초제까지 사용하지 않는다. 태평스레 농사를 짓는다 해서‘태평농법’으로 부른다.

벼농사는 초여름 밀·보리 수확과 동시에 논에 볍씨를 뿌린 뒤 보릿짚·밀짚 등을 덮는 2모작이다. 가을엔 벼를 거두면서 밀·보리를 파종한다. 모내기를 하지 않아 물을 거의 대지 않고 벼 생육 집중기에 2∼3번 물을 댈 뿐이다.

거름을 넣지 않고 보릿짚·밀짚이 퇴비가 된다. 씨앗 위에 덮힌 짚·보릿대가 잡초 생육을 억제하며 온갖 미생물·천적들을 생겨나게 한다. 땅을 갈아 엎지 않는 것은 미생물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땅속 미생물들이 써래질 해주기 때문에 물을 대지 않아도 씨앗은 습기를 찾아 뿌리를 깊이 내린다.

◆지장(地藏)농법=태평농법과 비슷하다. 논에 물을 적당히 넣었다 뺐다 하면서 물을 싫어하는 잡초를 물에 잠기게 해 죽이는 ‘잡초 수장(水葬)법’을 추가했다. 볍씨를 뿌린 뒤 3~4주 논물을 넣지 않다가 잡초가 어느 정도 자랐을때 물을 1주일쯤 채워 두면 잡초들이 시들해 져 죽게 만드는 것이다. 땅을 상징하는 불교의 지장보살에서 따온 이름을 붙였다.

태평농법보다 실용적이어서 대규모 농사가 가능하다. 지난달 25일 경남 고성군 거류면 은월리 들녘 13.3㏊ 에서 지장농법 발표회가 있었다. 이곳에서는 가공용 쌀인 ‘고아미’품종을 수확했었다. 고아미는 쌀국수, 쌀냉면을 만들 수 있는 국내 품종으로 대규모로 수확하기는 처음이었다.

경상대 최진룡(농학과)교수는 “논을 갈면 메탄가스 발생량이 서 너 배 높아지기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땅을 갈아 엎지 않는 친환경 농사법에 관심이 많다”며 “우리나라도 이번기회에 이러한 농법을 많이 보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지속농업연구회는 풀이 나지 않도록 하기위해 곡식을 수확한 뒤 볏짚과 보릿짚·밀짚을 메트리스처럼 만들어 논에 까는 농기계 개발을 마치고 곧 보급할 계획이다.

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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