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학교야 학교야 뭐하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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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나는 안쓰럽고 죄스런 마음에 어디엔가 숨고 싶다.감히 매천(梅泉) 황현(黃玹)선생의 흉내를 내도 된다면,교육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 노릇이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하게 되니 말이다.그것은 바로 지금 한창인 입시소 동 때문이다.물론 이런 입시소동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그토록 문제가많고,또 그렇게 자주 뜯어고친 입시제도지만 여전히 이 엄동설한에 줄서기와 점수놀음을 답습하고 있다.수험생은 말할 것도 없고부모,아니 우리 모두를 비인간적이고 반교육적인 극한경쟁으로 몰아 넣는다.
올해 입시는 교육개혁안이 나오고 두번째 치르는 입시인지라 행여 기대도 없지 않았건만 역시 실망과 절망을 안겨주고 있다.무엇보다 화가 나고,화가 나다 못해 슬프기까지 한 일은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일부 고등학교의 못된 행각이다.세 칭 일류대학이라는 어느 특정대학에 더 많은 합격생을 내 실적을 올리기 위해 다른 학교 적성에 맞는 학과를 택해 특차지원하려는 학생들을방해하는 일 말이다.
도대체 이게 웬일인가.고등학교가 대입학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자조적(自嘲的)인 소리를 많이 들었어도,이게 무슨 자신들의가장 기본적인 교육의 의무마저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비교육적인 처사인가.아무리 갈 때까지 간 우리 중등교육이지 만 어떻게 이지경까지 갈 수 있는가.언뜻 여러 해전 국민교육헌장을 빗대 패러디화(化)한.학교야 학교야 뭐하니'라는.고교교육헌장'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영악한 마음과 빈약한 몸으로 입시의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 을 무시하고 우리의 성적만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아 찍기의 힘과 눈치의 정신을 기른다'는내용이다.
물론 현장교사들의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다.당신들 스스로도 극한경쟁에 시달린 나머지 오죽하면 그럴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든다.게임의 법칙이 워낙 그런데 어쩌겠느냐는 변명도 들린다.그렇지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우리가 왜 교육을 하는지 근본적인물음은 한번 던져봐야 한다.바로 자라나는 세대에게 삶의 틀을 마련해주는 일이 교육이다.그런데 실적과 업적을 위해 사람을 세칭 일류대학 입학의 한 숫자로 전락시키고 만다면 그 사람의 삶은 어떻게 될까.
실제로 그 일류대학에서 가르치는 어느 교수께서 그렇게 입학한학생들의 불행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나로선 백보를 양보해도 이런 일만은 교육적인 양심으로 절대 용허(容許)할 수 없다.교육은 결국 앞날의 삶을 준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지금,여기 삶의 현장이 아니던가.적성보다 성적으로 대학을 선택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관행이라 해도 이런 식으로 그나마의 변화와 희망을 무참하게 꺾을 수 있는가.
바야흐로 세상은 달라지고 있다.그런 바뀐 세상에서 살게 될 자라나는 세대,그리고 오늘의 수험생들은 그 알량한 성적보다는 인성(人性)으로,되잖은 일류학교 딱지보다는 적성과 재능으로 제몫을 하며 살게 될 것이다.이것은 고루한 학문적 이론이 아니라엄연한 현실이다.그런데도 대세를 거스르고 목전의 이익만을 추구해 사람을 그르치려는가.
교육은 장사 수단이나 벼슬 수단이 아닌 사람의 삶이다.제발 이런 놀음은 집어 치우고 제대로 교육을 해야 한다.그러기 위해선 사실은 어떤 의미에서 역시 희생자인 현장교사들만 나무라서는안된다.수단과 목적이 뒤집히고 가치가 거꾸로 된 사회 전반의 뼈를 깎는 성찰(省察)이 뒤따라야 한다.모든 삶의 영역에서 걸핏하면 시대착오적인 학연.지연을 들먹이는 줏대없고 배알도 없는어른들의 관행을 고쳐야 한다.이런 어른들이 수험생들의 선택권.
학습권.교육권을 짓밟아 결국 인권 을 유린하는 오늘날과 같은 편법과 억지를 낳은 것이다.
교육을 교육답게,학교를 학교답게 해야만 가뜩이나 흔들리는 우리사회가 바로 설 것이다.
鄭有盛 <서강대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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