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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네여인의 홀로서기 영화 "문라이트&발렌티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남자들은 왜 조깅을 해야하는지 몰라.”새벽에 홀로 눈뜬 여인은 남편의 빈 잠자리를 보고 투덜거린다.여느 때와 달리 이날남편은 출근때까지 돌아오지 않는다.조깅복차림 남자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병원에 달려간 여인은 졸지에 미망인이 된 자신을 발견하고 망연자실해한다.
.빅'에서 톰 행크스의 연인으로 나왔던 엘리자베스 퍼킨스,80년대 스크린을 휘어잡았던 중견여우 캐서린 터너,설명이 필요없는 코미디 스타 우피 골드버그와 할리우드의 떠오르는 신성 기네스 펠트로가.4인방'을 이루는 매혹적인 여성영화.문 라이트 앤발렌티노'(스타맥스.미개봉작.16일 출시)는 이렇게 슬픈 도입부로 시작된다.
상처받은 여성이 홀로서기를 하며 겪는 생의 곡절을 다룬 영화는 페미니즘 계열의 서구영화에서 즐겨 다뤄온 소재.그러나 이 영화는 현실에서 여성들이 겪는 다양한 상처들을 섬세히 집어내고그 상처의 뿌리까지 정직하게 파고들어가 여성관객 들에게 살아있는 공감을 선사하고 있다.시를 가르치는 여교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한 터치로 이야기를 풀어감에도 진실이뿜어내는 힘이 느껴진다.그래서 추상적인 여성독립선언에 머무르는흔한 페미니즘 영화들과는 다르다.
영화는 남편을 잃은 레베카(퍼킨스)의 집에 누이동생(펠트로)과 새 엄마(터너),그리고 단짝(골드버그)등 세 여성이 모여들어 주인공을 위로하는 과정을 따라간다.위로하러 모인 세 여성도속에 자신만의 상처를 감춘 주인공들이다.자신의 벗은 몸에 콤플렉스를 가진 펠트로는 세상을 떠난 친모를 못잊어하고,의붓딸들에게 엄마노릇을 하고 싶은 터너는 그런 펠트로 때문에 마음이 상해 있다.또 골드버그는 풀리지 않는 가정생활로 과부 아닌 과부가 된 처지.
셋은 뭔가 아구가 맞지 않는 관계속에서 자신들의 상처부터 직시해야함을 깨닫게 된다.마침내 네 여인은 한밤중 무덤가에 모여서로의 상처를 바라봐주는 의식을 치른다.극작가 닐 사이먼의 딸엘렌 사이먼이 자기 경험을 토대로 쓴 각본을 남성감독 데이비드앤스터가 절제된 연출로 잘 살렸다.그러나 영화의 맛은 당대의 여우들이 벌이는 팽팽한 연기대결에서 나온다.특히 넷중 가장 신참인 펠트로는 선배들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 신선한 연기를 펼친다.네 여인의 감정이동을 그대 로 따라간 영화속도가 조금 지루한 감도 없지 않지만 생각하는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에겐 적정속도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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