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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프라를세우자>11.한국근대문학관 건립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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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민족이다.그만큼 유구한 문화전통을 내세운다.문화전통중 우리는 단연 문학을 앞세운다.그 문학을 일궈낸 선비,문사(文士)에 강한 존중을 나타내는 민족이 우리 한민족이다.그러나 이 문사의 나라에 이렇다할 문학기 념관 혹은 박물관은 찾아보기 힘들다.개발 논리에 눌려 선비 정신 운운은 빈말에 불과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 현상이다.
96년 문학의 해를 맞아 조직위원회는 최대사업으로.한국근대문학관'을 건립하겠다고 나섰다.80년대 들면서 문인협회등을 주축으로 문학관 건립 움직임이 일긴 했으나 번번이 좌절돼온 그 숙원을 올해 이뤄보겠다고 나선 것이다.그래서 지난 5월 문학의 해 조직위원회는 정계.언론계.문화계.교육계.문학계등 각계 지도급 인사 27명을 한국근대문학관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으로 추대했다. 이 건립계획에 따르면 5백억원의 예산으로 2천평 규모의 근대문학관이 99년10월 개관하게 된다.그러나 아직 부지 선정은 물론 추진위원회 회의 한번 못 열린 상태여서 문학에 대한 우리 사회의 냉대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하는 문학의 해로 막을내리게 된다.우리 문학의 오랜 전통과 그 정신적 가치를 생각한다면 문학관 하나 갖고 있지 못함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종합적인 문학관은 차치하고 작가나 시인의 문학적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한 개인 문학기념관도 전무하다시피한게 우리 문학계의 현실이다.목포에서 향토작가를 기리기 위해 세운 박화성문학기념관 정도가 고작이며 한용운시인의 문학관이 .님의 침묵'의산실인 설악산 백담사에,작가 박경리씨의 토지문학관이 원주에 건립될 예정이다.한편 문학의 해 조직위원회는 동국대 한국문학연구소에 의뢰해.한국문학지도'를 상.하 2권으로 지난 11월 계몽사에서 펴냈다.이 책은 한국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문인 1천여명의 고향.작품현장.유적등을 70여명의 문인.학자들이 답사해놓아 제목 그대로 최초의 한국문학지도를 그려놓은 것이다.문학의 해를 맞아 이제 우리도 문학 유적을 보존하고 그것을 다시 정서교육과 관광자원으로 활 용해보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러한 시점이기에 근대문학관 건립이 더욱 절실하다.이 사업이바로 문학 유적,즉 한국의 정신을 보존하겠다는 한 상징이 되기때문이다.문학의 역사,그 창작의 혼을 보관하기 위한 노력이 지금까지 전무하다시피 했으니 개화 이후 근대문학 의 관계자료를 보면 시집이나 소설집 초간본이 온전하게 보관된 도서관을 찾을 수 없고 유명문인들의 친필 원고나 필기구등도 하염없이 소실되고있다.문학작품이 많이 발표된 일제하 문예지등도 쪽쪽이 떨어져나가고,썩어가고 있다.유명 문인이삐 드나들며 앉아 차를 마시던 다방의 의자 하나도 세계의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게 하는 외국의 사례에 비하면 우리는 문학유산의 보호에 너무도 인색했던게 사실이다. 한국 근대문학 관계자료를 체계적.전문적으로 모아둔 도서관은 한군데도 없다.국립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조차도 제대로 자료를 갖춰놓고 있지 못하며 어느 대학도서관도 제대로 자료를 구비.정리해놓지 못하고 있어 연구자들을 난감하게 만든다.이 렇다보니 한국 근대문학.문인을 연구하기 위해 일본등지의 도서관을 뒤지러 가는 학자들도 많다.
때문에 한국 근대문학의 모든 자료를 수집.정리.보존.연구할 수 있도록 모아둔 곳이 한 곳이라도 있어야 한다.우리 문학의 정신과 전통을 제대로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기반 조성을 위해서도 근대문학관이 필요하다.
또 문학창작.연구.교육 활동의 체계적 지원을 위해서도 근대문학관의 건립은 필요하다.문인들에게 자료조사와 집필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창작의욕을 고취시킬 필요가 있다.문학이아무리 개인 창작 공간에서 산출된다고 하지만 정 보화.세계화 시대에 정보 접근과 취득이 어려우면 세계문학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또 문학창작교실을 상시로 열어 문학 교육을 통해 국민의 정서를 순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그렇게 하여 무엇보다 문학을 국민의 삶속으로 되돌려야 한다.시를 쓰든지,산문을 쓰든지 원고지 앞에 앉은 사람들은 아름답다.그들의 현실이 어떠한 삶을 살고 있든지 그 작품앞에서는 진솔할 수밖에 없다.그 진솔한 마음들을 위해,문학하는 국민들을 위해 근대문학관 건립은 시급하다.
문학의 해 조직위원회는 5천만원의 기금으로 근대문학관 건립을내년도 계속사업으로 넘길 예정이다.이 사업은 그 규모상 문단에서만 떠맡기는 힘들다.정.재계등 사회 각계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근대 1백년 민족사의 격랑 한가운데를 흐르며 민족정신을 지켜온 우리 근대문학의 영광을 위해 문학 인프라의 한 상징으로서 금세기가 가기 전에 근대문학관은 건립을 봐야 할 것이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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